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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y 28. 2024

공부 잘하는 선재 친구

"선재 이번에 수학학원 옮겼잖아."

"선재? 그 반에서 공부 잘한다는 걔?"

"응, 선재 친구가 수학을 엄청 잘하는데, 그동안 집공부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학원을 갔대. 

그래서 선재도 바로 그 학원으로 옮겼다더라."


놀이터 정자에서 나눈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나에게까지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아 존재감 없었던 공부 잘하는 아이. 그 아이가 6학년이 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이가 사교육 현장에서 이름이 불리자 아이 공부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은 그 아이의 정보를 찾느라 바쁘다. 이 중 선재엄마는 가장 발 빠르게 그 수학학원을 알아내어 원장과 허심탄회하게 상담을 했더란다. 그 아이가 이 학원을 다닌다는데 맞냐, 지금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 성적은 어떠하냐, 성격은 어떠냐 혹시 다른 학원 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보았냐 하며 상담 내내 선재가 아닌 선재친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는 그 자리에서 선재를 등록시켰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그렇다. 선재친구는 우리 집 1호다. 1호에 대해 아는 동네 엄마들과 1호 친구들을 통해 듣는 요즘 1호에 대한 소문에 황당해 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그동안 교재는 무얼 쓰는지, 인터넷 강의는 무얼 듣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이 아닌 제삼자에게 까지 정보를 캐내려 시간을 쓰고 있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초등 수학 과정이 끝나진 않았지만, 초등 심화와 중등 복습과정을 집에서 하기 위해 수학학원을 병행하기로 했다.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아이와 학습 진도에 대해 의논하여 학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이제 적응하며 다니는 중인데 이런 소문이 날 줄이야. 덕분에 학원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었던 1호는 주위에서 띄워주는 뜬구름을 탄 재미에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


"엄마, 태성이 알아?"

"태성이? 선재 친구?"

"어. 걔도 다음 달부터 우리 학원 다닌대."

"그 형도 형아 때문에 오는 거 아냐? 이 정도면 원장님한테 학원비 할인받아야 하는 거 아냐?"


선재가 다니면서 1호의 학원이 자연스럽게 알려졌고, 1호가 누구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고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하물며 부모가 뭐 하는 사람인지까지 동네에 알려졌다. 남 앞에 서는 것은 물론이요, 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이런 상황이 매우 당혹스러운데, 특히나 엄마인 나는 핸드폰조차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궁금증은 현재 1호의 성적이나 학원이 아니었다. 그동안 무얼 어떻게 했는지, 학원을 안 다니고 있는 논술과 영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래서 현재 수준이 어디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직 등수나 성적에 대해 명확히 알기가 어려운데 곧 중학생이 된다 하니 1호 친구 부모님들은 퍽이나 호기심이 생긴 것이겠지. 이참에 집공부에 대한 장점을 알려줄까 하고 용기 내어 연락을 받아본다.


"집에서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돈 내고 수업 듣는 건 화상영어 말고는 없는데..."

"둘째도 마찬가지예요. 영어는 그냥 책 읽어요."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해주지만, 궁금해하는 쪽에서는 내가 숨기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몰래 과외라도 하는데 안 가르쳐 주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매우 서운해한다. 그렇게 오해하게 만든 건 무성한 소문들 탓이리라. 소문이 소문을 낳아 지금 1호는 이 동네 영재까지 되어있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사실이 되어 내가 아무리 주위사람들에게 아니라고 핏줄 세워가며 변명해 보아도 소귀에 경읽기다. 이 정도면 서운해해야 하는 건 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가끔 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동안 집공부를 해 온 노력이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하나 보다.

놀이터를 보아도 아이들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가서 없고, 어린 꼬마들만 울다 웃으며 신나게 놀고 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보충이랍시고 이학원 저 학원 불려 다니느라 가족끼리 근교 나들이도 쉽지 않은 초6의 삶이라니 듣기만 해도 애처롭다. 


우리 집은 여전히 주말이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체험을 하고, 문화생활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TV를 볼 때도 있고, 느긋하게 누워 2~3시간씩 책을 읽기도 한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간식과 저녁을 먹고, 터질듯한 배를 꺼트리기 위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간다. 친구이야기, 공부이야기, 미래이야기, 만든 이야기 등등 끊이지 않는 아들의 수다에 귀에서 피가 날 지언정 이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 정말? ""그래서?""그랬구나."를 적절히 섞어가며 들어주는 척하는 이 순간이 오늘따라 고맙고 행복하고 그리고 뿌듯하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을 꼬드겨 주간 일정을 조금 늘려볼 작정이었는데 한 주 더 쉬었다가 6월부터 해야겠다.

아직 늦지 않았고, 앞으로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꾸준히 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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