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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un 04. 2024

살을 빼달라고 했더니 불면증이 왔다.

"한 달 사이에 10kg이 쪘어요."


나의 넋두리에 의사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하시면 보는 환자는 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불안을 느낀다는 걸 모르는 가보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병원은 처방해 준 약을 다 먹기도 전에 자꾸 방문해서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단골이 되었다. 언제나 나는 심각했지만, 그들에겐 익숙한 일상이었는데 이번에는 나의 진지함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고뇌하는 모습이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아이고~ 그러시구나" 공감도 해주며 평소보다 3배는 더 타자를 두드리고 지난 진료 차트를 수시로 확인한다.


"저, 문제 있는 거 맞죠? 식욕저하 약을 보조제로 먹어야겠죠?"

어차피 망가진 몸 약으로라도 살을 빼고 싶었다. 다이어트 약이 몸에 좋지 않고, 요요도 쉽게 온다는 이야기를 아파트 안내방송만큼이나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먹어야겠다. 한 달 사이에 10KG이 빠져도 될까 말까 한 무게인데 만삭 때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사실 약의 부작용이 식욕 증진과 붓기라는 걸 알고 살겠다고 먹는 우울증 약이었지만, 이렇게 급하게 기하급수적으로 찐다면 살겠다고 약을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바꾸고 다이어트까지 하려는 마음에 그 일이 생기자마자 다음날 병원을 향했던 것이다.

"저녁에 먹는 수면 유도제를 빼고 지내보죠."

"네? 식욕저하제는요?"

"식욕저하가 되는 우울증 약이 있지만, 지금 약이 충분히 잘 맞으니 수면 유도제를 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우울증 약을 바꾸면 다시 초기 용량부터 시작해야 하기에 지금 내 상황에서 약을 또 바꾸기는 조심스럽다는 게 의사의 의견이었다. 나는 예전의 나보다 더 날씬해질 나를 기대하고 갔는데 의사는 먹던 약에서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선택했다. 그 빼기가 그 빼기가 아닌데 이 의사도 남편만큼이나 눈치가 없다.




실제로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체중이 불어났다는 환자들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우울증 약 부작용이 아니더라도 우울증이 있으면 비만이 될 확률이 같이 높아지는데, 우울증이 생기면 살이 찌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유전적 요소

- BMI와 관련된 다양한 유전자가 뇌세포에 현저하게 많이 있다. BMI와 초기에 시작되는 심한 비만과 연관되는 유전자들은 우울증과 가장 연관된 유전자들이 많다.


2. 코티솔(인체 호르몬의 일종) 자극

- 스트레스로 장기간 코티솔에 노출되면 신경학적 손상이 나타나 우울증이 나타난다. 이 우울증은 비만을 초래하는 지방세포 생성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우울증이 먼저인지 비만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어쨌건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나는 그 둘을 떼어내고 싶은데 우울증보다 비만이 더 싫다는 거다. (현재 우울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그런 판단이 서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의사는 원치 않는 처방을 내려줬고, 결국 그렇게 빈 손으로 집으로 왔다. 

수면 유도제를 상태로 약을 먹은 그날 밤, 결국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30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러게 그냥 식욕억제제를 달라니까. 잠도 못 자고 살만 더 찌고'

잠을 못 자는 밤은 한탄과 원망의 시간이 되었고 병원이 오픈하는 시간까지 투덜거리며 기다리다 진료 시작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여전히 눈치가 없다.

"그러면 수면유도제를 반알만 드세요."

하아... 경험상 다이어트 혼자하는게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던데...



우울증이냐 비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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