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세빈이 마지막 날이야. 다음 주부터 다른 학원 다닌대."
1호의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세빈이는 1호와 같은 학원을 다니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1호와 건호, 그리고 세빈이는 학원 삼총사로 불리며 늘 붙어 다녔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세빈이가 갑작스럽게 학원을 그만둔다니.
"왜? 무슨 일 있어?"
"중학 수학 예습 진도가 너무 어려워서 못 따라가겠대."
1호의 목소리에는 적잖은 충격이 담겨 있었다. 세빈이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엔 묘한 감정이 스쳤다. 세빈이는 우리 집 아이가 학원을 다니며 만난 여러 친구들 중 이미 네 번째로 학원을 옮기는 친구였다.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 아니라 또 한 번의 도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을 믿어왔다. 공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숙제가 어렵고 진도가 빠르다고 무작정 학원을 옮기는 것이 해결책이 될까? 아이들이 문제를 마주할 때,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고 환경만 바꾸려 든다면 진정한 성장은 어디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날, 세빈이가 떠난 학원에는 또 다른 새 친구가 등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미 중3 수학을 한 바퀴 돌고 온 아이였다. 1호는 새 친구가 자신보다 훨씬 잘할 것 같아 경계하는 눈치였다. 12살짜리 아이가 벌써부터 친구를 경쟁자를 의식하며 마음을 졸이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학원을 쇼핑하듯 옮겨 다니는 아이들, 조금만 어려워도 환경을 바꾸는 선택. 나는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물론 아이들에게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도 끝까지 도전해 보는 경험은 어릴 때 꼭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는다.
세빈이는 힘든 숙제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학원을 떠났지만, 다른 곳에서는 또 새로운 어려움을 만날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세빈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까.
나는 1호에게 말해줬다.
"어려워도 괜찮아. 한 번에 다 할 필요 없어. 대신 조금씩이라도 해보자. 네가 매일 조금씩 해내면, 그게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다. 숙제가 많아 막막할 땐 작은 목표를 세워 조금씩 완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이러한 작은 성공들이 쌓일 때 아이는 스스로를 믿게 되고, 더 큰 어려움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학원가 골목에는 울고 있는 아이, 무기력하게 걷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의 기대와 경쟁의 압박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속도를 잃고 방향을 잃는다. 나는 부모로서 1호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려워도 괜찮아. 네가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버티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부모도 함께 버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그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1호가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기를 바란다. 그 길이 때로는 고되고 느릴지라도, 멈추지 않는 한 반드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1호가 깨닫게 되길 바란다. 버티는 것이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끝까지 도전하는 과정임을.
부모로서 나 역시 믿고 기다려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아이를 응원하며, 아이와 함께 버티는 여정을 걸어갈 것이다.
"오늘도 잘 해냈구나." 나는 그렇게 작은 성공의 순간을 함께 기뻐할 것이다.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