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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Dec 07. 2023

당신의 구멍은 안녕한가요

마음이 외롭다면 그것은


  동산이 벌거숭이가 됐다. 알록달록 색을 입은 지 얼마 전이었는데 이젠 속살까지 드러났다. 의연한 소나무들만 자리를 지킬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가볍게 춤을 춘다. 햇빛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어 그 움직임이 더 잘 보인다. 까치가 엄청난 수직하강을 한 뒤 호숫가 위에 안착했다. 듣기 좋은 까치 울음소리.



  나 홀로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니 어제 본 영화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비록 렌털네코의 수레는 없지만 말이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는 가게이다. 그러한 손님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마음속 빈 구멍을 메꿔라는 메시지가 곳곳에 나온다. 그런데 남들의 구멍은 잘 메꿔주면서도 본인의 구멍은 어떻게 메우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일열로 줄지어 서있는 가로수길에 당도했다. 사람 얼굴보다 큰 낙엽으로 덮여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땅밑은 깔끔했다. 저 멀리서 공원 관리인들이 연두색의 커다란 빗자루로 낙엽을 한 곳으로 끌어모아 노란색 포대자루에 담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왕릉 같은 사이즈의 엄청난 포대자루 무덤이 쌓여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낙엽이 떨어지는구나. 하긴 공원에 심어진 나무만 해도 몇천, 몇만 그루는 되니까. 문득 낙엽이 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포털에 검색해 보니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햇빛이 강렬했던 여름에는 광합성이 쉽게 진행됐지만 가을, 겨울로 접어들면서 일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광합성이 어려워진다. 쉬웠던 수분공급이 더 이상 어렵게 되었으므로 나무 입장에서는 푸르고 널찍한 잎사귀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판단한다.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그리고 변해가는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이파리를 아낌없이 떨어트리면서 동면을 준비하는 거라고 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봄, 여름 간 열심히 피어내고 무럭무럭 자라 낸 거대한 잎사귀를 가차 없이 떠나보내는 나무들. 참으로 대단한 생명력과 결단력이구나. 이 과정을 나무는 매해 반복한다. 누군가 알아봐 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사실 누군가 알아주기 위해 하는 짓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떤 행동이든 간에 나 자신이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겨울을 잘 나기 위해, 이듬해에 다가올 강렬한 햇빛을 기다리며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처럼 말이다.


  뼈만 남은 벌거숭이 나무가 되어도, 푸른색으로 빼곡했던 산이 듬성듬성 구멍이 생기더라도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귀여운 잎으로 채워진다는 걸 우리는 안다. 영화의 주인공도 할머니의 부재를 고양이로서 조금씩 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준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구멍을 메꾸며 삶을 사는 생명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지만 내 마음속 구멍을 통해서는 더 이상 차가운 바람이 불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이 구멍이 메꿔질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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