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는 친절을 싣고.
사소하지 않은 친절.
음... 식물 쓰레기.
인터넷에서 보면 좋지 않은 방법이라곤 하지만, 우리 집은 밀폐용기에 음식물을 넣고 냉동실 아래쪽에 보관했다가 주말에 버리곤 한다.
음식물쓰레기를 얼리는 게 아니라, 음식물을 얼리는 거라 합리화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꽤 귀찮은 일이다.
남편이 버려주지 않을까 슬쩍 눈치를 보기도 하고,
"오늘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주말에 슬쩍 얘기를 꺼내 보기도 한다.
근데 이 남자는 귀찮은 건지 잊어버리는 건지,
(이 남자의 특성을 생각해 봤을 때, 후자일 것이다)
월요일이 되면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는 냉동실 제일 아래칸에 입주하고 있다.
이 안에 나 있다!
내 지랄 맞은 성격상 가끔 그것을 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이 있다. 유난히 그 자리에 있는 그놈의 존재감이 거슬리는 날.
그런데 문제는 모아 두어 얼려진 음식물 쓰레기는 무겁고, 내가 목발을 짚고 한 손으로 들고 가기엔 음식물 쓰레기처리통이 내 입장에선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고로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한 번 버리기 위해 나름 큰 맘을 먹어야 한다.
'그래! 결심했어!' 수준으로. 흠.
오늘은 그날이다. 내 안의 예민이 터져, 냉동실의 그놈을 처치해야만 하는 디데이.
우선 음식물쓰레기 카드를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한쪽에 끼고, 비장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러 가는 나를 위한 응원가를 재생한다. 그리고 물티슈 몇 장을 꺼내서 고이 접은 다음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다. 일처리가 끝나고 난 후 손에 남은 흔적을 지우기 위한 도구. 후훗.
준비는 끝났다.
자, 가자.
한쪽에 목발을 짚고, 한쪽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제법 묵직하다.
나는 정말 힘이 없는 인간이구나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저- 쪽에서 도로에 떨어진 낙엽을 리드미컬하게 쓸고 계시는 경비원님이 보인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보지 않는 편이고 그래서 기억도 잘 못하지만, 그분은 평소에 내가 쓰레기를 버리다 마주치면 와서 대신 가져가 버려 주시곤 해서 마주칠 때마다 목례정도는 하는 분이다. 아파트가 크지 않아서 관리하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나다 마주치면 그분이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도 열심히 작업하고 계시네' 하고 생각하고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경비원님이 저-쪽에서 뛰어 오신다.
어, 선생님! 왜, 왜 뛰어 오시는 건가요.
그분은 내 손에 들린 비닐을 얼른 받아 드시더니
"제가 버릴게요" 하신다.
당황한 나는,
"아, 아니에요. 제가 버릴게요. 음식물쓰레긴데요."라고 민망해하며 말했다.
그분은 그냥 웃으시더니 망설임 없이 음식물쓰레기를 대신 버려주셨고, 나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분은 "제가 정리할 테니 얼른 가세요. 다리 아프실 땐 이렇게 무거운 거 드시면 더 아파요" 하셨다.
평소에 내 아픈 다리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누가 그렇게 말하면 마음 한쪽이 구겨지곤 했는데, 그분의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진. 짜. 였기 때문이다.
(쓰레기 대신 버려주셨다고 그러는 거 아님.)
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하면서 지으시던 그분의 미소를 보여주고 싶다.
참으로 오랜만에 낯선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분에게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티슈를 건넸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분은 사소한 친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친절은 나에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 제 마음 한쪽이 말갛게 피어났습니다. 덕분에 하루가 향기로워졌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