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로키 마운틴
나에게는 인생의 ‘등대’ 같은 존재가 있다. White Lotus 선생님이다. 대학시절 토론토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친구를 따라 간 영어 그룹 수업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힘든 일이 있거나, 새로운 경험을 할 때면 항상 ‘lesson’이 뭐였냐고 물으셨다. 해결 방안을 가르쳐 주거나 위로나 격려를 해주는 것보다 오히려 다시 생각할 질문을 받는다는 게 신선하면서 좋았다. 그리고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는 것은 없으며 그 속에 얻을 교훈이 있다는 것도 함께 알려주셨다. 이 가르침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취업이 힘들었을 때, 직장 생활이 고될 때에도 언젠가 세상에 쓰일 나만의 스토리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이겨내며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으로 마음이 힘들었을 때 선생님이 많이 생각났고 오랜만이었지만 불쑥 이메일을 보내보았다. 내용은 그동안 이만큼이나 열심히 살아왔다는 구구절절한 장기 자랑이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털어내고 싶었던 혼자만의 고해성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13년 만에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인생의 여러 관문을 거치며 겪는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오직 오지선다밖에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마저도 비슷비슷한 보기 중에서 다들 적당하다고 하는 뻔한 답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결정하고 보면 나에게 잘 맞지도 않았다. 이런 고민들은 나의 좁은 식견이 자식도 나처럼 똑같이 살게 하는 것은 아닌지, 대물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커지기도 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배우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도시를 떠나 로키산맥과 가까운 작은 동네에서 살고 계신 선생님은 시골 마을의 사는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로키에서 찍은 사진도 보내주셨다. ‘세상엔 이런 곳도 있구나’ 한국에서 본 적 없던 대자연의 풍경과 나와는 다른 일상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다른 제자 한 명을 소개해 주셨는데, 밴쿠버 이민 생활을 웹툰으로 담고 있는 내 또래의 친구였다. 취업이나, 결혼 같은 정해진 경로보다는 이민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선택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홀로 떠나온 낯선 세상을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넘어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경험이라고 표현했는데, 정해진 답만 풀어 오던 나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사진과 웹툰 속 이야기는 마치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캐나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좋아했던 해외여행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감과는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궁금했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 경험해 보고 배우고 싶기도 했다. 이민은 못 가도 ‘한 달 살기’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작은 소망 하나를 품게 되었다.
또 한 편으로는 ‘사업도 망했으면서 웬 해외여행?’ 가당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파트타임이지만 일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여행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듯이, 앞으로 내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가족과 다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으니 정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유니 쇼핑몰 대표 박나다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어디시죠?” “노란우산입니다. 공제금 신청해서 찾아가세요” 사업 초기부터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가입했던 것인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6년 동안 부지런히 넣은 공제금은 제법 큰 목돈이 되어있었다.
‘할렐루야!’ 여행 경비가 단비처럼 노란 우산을 쓰고 내 통장으로 내려왔다.
캐나다로 오라는 ‘초대장’ 임이 확실해졌다.
노란 우산이란 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폐업이나 노령 등의 생계 위협으로부터 생활의 안정을 기하고 사업재기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협동조합 법에 따라 운영되는 사업주의 퇴직금(목돈 마련)을 위한 공제 제도이다. 수급권 보호, 소득공제, 복리 이자 등의 혜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