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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나다 Nov 27. 2023

저지르는 용기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법칙

사업을 접은 뒤 발견한 목돈은 마치 로또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이 행운에 감사하며 캐나다 여행에 쓰기로 했다. 비록 결과가 속상하고 과정에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성실히 살아온 세월 전부가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했으니 졸업 선물을 받을 자격은 있었다.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다 보니 대략적인 경비가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금액이 상당히 컸다. 다행히 공제금(퇴직금)을 탈탈 털고 몇 달만 더 모으면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 돈을 버는 것만 힘든 줄 알았는데 쓰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쓰는 건 누구나 잘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공돈처럼 생긴 목돈이 아니었나. 스스로도 황당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채우는 삶’에만 집중해 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의 연속이었다. 대출금 상환이나 투자같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종잣돈이든 품돈이든 모아서 불리는 것만 하다가, 해외여행을 위해 한 방에 큰돈을 지출하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던 ‘쎄 빠지게 번 돈’이었던 만큼 아까웠다. 텅텅 빈 텅장을 다시 채울 것까지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평생 채우기만 할 수 있을까, 비워야 채워질 때도 있다. 지금은 엎어진 김에 쉬어가며 회복을 위해 쓸 차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망해서 얻는 점도 있긴 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돈도 써본 적이 있어야 잘 쓰는 거겠지. 저지르는 용기가 필요했다. 대신 단순히 먹고 노는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캐나다 선생님은 여행의 ‘Intention’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할 때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거라는 조언이었다. 사전에 단어를 검색했다. ‘목적: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실천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세운 행위의 목표’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남편과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지만 삶은 점점 버거워졌다. 분명 ‘잘’ 살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느꼈고 불안했다. 늘 애쓰고 미션처럼 사는 것은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린 아들에게 우리처럼 살라고 하기 싫었다. 우리 가족은 삶의 방향과 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캐나다 한 달 살기 여행의 Intention을 “Let it flow” 그리고 “How to live”로 정했다. 그동안의 실수와 후회의 시간은 모두 흘려보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궁리의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시설 좋은 호텔을 예약하고, 관광지와 맛집을 모두 훑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여행과는 마음가짐이 좀 달랐다. 아이와 우리 부부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수학여행인 만큼 준비부터 정성을 다했다. 힐링과 경험을 골고루 담는 일정을 짜고, 다양한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숙소도 고심 끝에 골랐다. 출발도 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목적을 향해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의미 있고 즐거웠다.


물론 아이도 모든 과정에 참여시켰다. 고작 다섯 살 된 장난꾸러기지만 한 달 살기의 가장 중요한 크루였다. 온라인 지도를 켜서 이동 경로를 시뮬레이션해주고, 얼마나 긴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야 하는지도 눈높이에 맞게 설명했다. 캐나다의 크기와 지형을 보면서 우리가 경험할 것들에 대한 사진과 영상도 보았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여러 차례 물었다. 아이는 점점 궁금한 것들이 생기고 기대감이 생기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는 왜 캐나다에 가고 싶은지 또 너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알아들었는지 이해는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큰 경험을 함께 할 친구이자 핵심 멤버로서 아이를 대했다.


나는 누구보다 물질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풍족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요즘 엄마였지만, 이제는 값비싼 옷이나, 장난감, 고급 키즈 풀빌라 대신 삶의 다양성이나 좀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여행도 해 볼수록 잘하겠지. 여러 경험들이 쌓여 많은 선택지를 보고 배우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생의 여행자가 될 것이란 작은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저지르는 용기를 낸 우리에게 뜻깊은 시간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여행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

출처 pixa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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