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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12. 2024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면

독일에서 알게 된 행복의 의미,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아

“We are Alcoholic, But It's Okay. because We are in Germany.”


대개 이런 대화와 함께, 우리의 파티는 시작됩니다. 일주일에 맥주를 두 잔 이상 마시면 ‘Alcohol holic’이라고 정의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독일에서는 모든 게 괜찮다”며 정신 놓고 맥주를 마십니다. 독일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맥주 가격 때문인데요. 튀르키예에서는 술이 매우 비싸대요. 그래서 튀르키예에서 온 친구들은 마트에만 가면 정신을 못 차리고 술을 담는다고 해요. 물론, 한국에서 온 저희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네 캔 만 원' 맥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격이 싸니까요. 500ml 한 병에 1000원 정도면 꽤 질이 좋은 맥주를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병을 마트에 돌려주면 400원 정도는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숙자를 위해 일부러 공병을 공원에 두고 가거나 쓰레기통 앞에 모아두는 문화도 있대요.


술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번 주 레터는 뻔한 주제이지만 쉽게 정의하기에는 어려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도시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Nord Park에서 국제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공유하려 하는데요. 한 줄 요약하자면 통계청이 매년 제시하는 국가별 행복 지수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겁니다. 레터에서 참고한 국가별 행복 지수 순위는 지난해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2022 세계 행복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유럽 3개국(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은 언제나처럼 최상위권을 차지했고요. 4위를 차지한 스위스가 서유럽 국가 중엔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그 뒤로 독일이 14위, 프랑스가 24위, 슬로바키아가 35위 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와 한국은 나란히 58위, 59위를 기록했습니다. �


그 공원에는 위에 언급한 나라 출신 학생들이 모두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들은 “너희 나라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순위대로 답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물론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다”고 답했고요. 프랑스, 슬로바키아에서 온 친구들도 제 나라에 꽤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온 친구와 저는 각자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국제 학생 중 가장 해맑고 사회성 좋은 그리스 친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처음으로 우울한 기색을 보였고요. 저와 제 친구는 한국에서는 왜 행복하기가 어려운지 설명하느라 바빴습니다. 모두 각자의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행복과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한 건 ‘나라’가 아닌 ‘나’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오자 모두 표정이 밝아졌다는 건데요. 너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모두 눈을 반짝였습니다. 스위스 친구는 "인간은 항상 나의 과거가 어땠나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당장’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이곳에 머물렀던 한 프랑스 친구는 “지금처럼 해가 뜬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3개월 전에는 매일이 흐렸다”며 잔디밭에 쏘아 내리는 햇볕을 맘껏 즐기라고 말했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친구는 행복을 “grateful”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날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아름다운 걸 볼 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말이죠. 그날 이후로 행복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려봤어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한국인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개개인의 자세가 곧 국가 전체 행복 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듯도 합니다. 근데 단순히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결론 내리기엔 참 복잡합니다.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애초에 타인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극한에 몰아넣을 상황이 잘 없는 듯보였거든요. 


질 높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국가 차원에서 보장하고요. 국가가 정한 공휴일도 상당히 많습니다. 일요일은 ‘반드시’ 쉬고요. (독일은 일요일 휴무를 법으로 규제하기도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적절한 근무시간을 준수합니다. 독일의 주당 근로 시간은 37~38시간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한국의 살인적인 노동 시간이 국제 학생들 사이에 Hot Issue가 된 적도 있습니다.


짧은 노동시간과 충분한 임금은 한 나라의 품격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6개월 잠깐 살고 돌아갈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한국보다 근무시간이 적으니 행정 처리도 엄청 느리고요. 교직원이고 공무원이고 일을 보려면 내가 그들의 시간에 맞춰 방문해야 합니다. 9시부터 6시까지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죠. 잠깐 공부하다가 시간을 보면 마트고 식당이고 다 닫을 시간이라 곤란했던 적이 많습니다. 인건비가 높으니 외식 물가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입니다. 덕분에 하루하루 요리 실력만 늘어요. 하지만 제가 독일 국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듯합니다. 내가 식당에서 서빙을 해도,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해도, 교직원이 된다 해도 적정한 수준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니까요.


물론, 이곳도 유토피아는 아닙니다.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고 경쟁합니다. 세대와 성별 사이의 갈등도 부쩍 사회문제로 떠올랐다고 해요. 그러나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것을 하나 꼽자면, 무언가를 죽기 살기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되, 먹고 살기 위해 죽어라 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일을 찾고 꿈을 꾸되, 도태되지 않기 위해 코피를 쏟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그들이 그렇게 잘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데에는 복잡한 역사적 토대가 깔려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저녁에 휴식을 취할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들을 대신해 누군가 일하고 있을 겁니다. 유럽인들은 비옥한 땅에서 자원을 선점했고 숱한 전쟁을 겪었으며 동양과 개발도상국에 비해 비교적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자원은 국가의 총 행복 지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GDP 순위대로 행복 지수가 정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행복 지수를 조사할 때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원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 더욱 느낍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의 다짐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는 일 아닐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먹고 살 수 있는’ 삶이 보장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들, 예를 들어 젠더, 세대 간 갈등과 저출생 문제는 모두 ‘불안함’에서 기인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함, 내 아이를 이 나라에서 키울 수 없다는 불안함. 이러한 불안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26위를 차지한 대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은 59위입니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인데요. 대만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는 "대만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꾸준히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개혁한 덕분"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자세한 건 이 기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만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고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다독여주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죽기 살기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으니까요. 스스로를 칭찬해주시고 동시에 자신에게 집중하는 하루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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