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Feb 20. 2024

독일 대도시VS소도시 여행기 ♥

feat. 하이델베르크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 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 <여행자>, 김영하 中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3번이나 방문한 김영하 작가는 2007년,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하이델베르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발간했습니다. 여행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지만, 같은 곳에 서 있는 내 모습은 계속 바뀐다는 걸 자각하는 일. 그것이 ‘다시 가는 여행’의 매력이라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가 그런 소설을 냈다는 건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이런 걸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은 “프랑크푸르트와 하이델베르크 다녀온 썰.txt”을 풉니다. 어떤 분이 ‘여행기 존버’라고 남겨주셨는데 덕분에 맘 편히 여행기를 씁니다. 감사해요! 고백하자면, 여기에서도 여행을 가야지 다짐만 하고 살짝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던 것보다 7000배 여유롭긴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고 집안일만 하면 하루가 다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분명 1주 1도시를 계획했는데 말이죠. 그러던 중, 지인이 프랑크푸르트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활기를 좀 얻었고요.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 전망대에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하이델베르크를 두고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목가적인 도시"라고 말했답니다. 한국 대학생인 문효민씨는 하이델베르크를 보고 “유럽 사람들은 조상 잘 만난 덕으로 이런 풍경을 등지에 두고 산다니, 이제는 억울한 걸 떠나서 원통하다”고 평가했는데요.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아름다운 정경을 많이 만나잖아요? 보통 두 가지로 갈린다고 해요. 너무 아름다워서 벅찬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 혹은 오래 바라볼수록 편안해지는 따뜻한 도시로요. 하이델베르크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그래서 다른 여행에 대한 의욕을 잃기도 했어요. 다시 이런 도시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요.


하이델베르크는 관광지와 대학 도시로 이루어진 구시가지와 사람들의 생활터인 신시가지가 ‘네카어 강’을 둘러싼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한국에서 ‘지방 대학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인데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독일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교로 알려져 있거든요. 오늘부터 하이델베르크 석사과정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도시, 왜 김영하가 3번이나 갔는지 납득되는 도시, 한 번 더 독일에 올 수 있다면 꼭 다시 방문할 도시.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리운 도시가 하이델베르크입니다.


독일의 자랑이자 독일 관광사업을 책임지는 분들은 대부분 철학자입니다. 괴테나 칸트, 헤겔 등이 대표적인데요. 그들이 자주 걸었다고 알려진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언덕이 가파른 편인데 70대로 추정되는 백발 할아버지보다 제가 더 벅차했던 걸 보면 사람에 따라 가파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의 길 끝에는 위 사진 속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는데요. 


여기서 TMI, 괴테가 노년에 ‘마리아네’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게 된 곳이 이곳 하이델베르크고요. 그렇게 쓰인 작품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만났을 때 마리아네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어쩔 도리가 없이 계속 사랑했다는데요. 마리아네는 하이델베르크 성 담벼락에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네요. (지금은 한국인 낙서가 많아 한국어로 된 경고판도 있습니다. �)


여기서 소신 발언, 불륜은 옳지 않지만, 이건 그들의 죄가 아니라 하이델베르크의 죄이기도 합니다. 모든 여행지가 그렇겠지만, 하이델베르크의 풍경과 날씨는 유독 마음을 연약하게 만듭니다. 이 풍경만 있다면 이 세상의 속박과 억압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와 같은, 다소 고루한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내가 고민하는 지 몰랐던 고민을 자각하게 되고, 그 고민에 대한 해법도 찾을 수 있게 되었어요.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일은 이렇게도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하나 봐요.


(왼) 네카어 강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와 하이델베르크 성 (오) '30년 전쟁'의 흔적이 담긴 하이델베르크 성


그 후 찾아간 곳은 하이델베르크 성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성이 '하이델베르크 성'입니다. 이곳은 17세기 벌어진 신·구교 간의 종교전쟁,’ ‘30년 전쟁’에서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아는 독일 현대 전쟁에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이라서요. 독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큰 부채감 없이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인 듯합니다. 성은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관광지인지라 관광객이 정말 많았는데요. 굉장히 오랜만에 한국말을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무리 관광지라도 그렇지. 평일 대낮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뭔가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 봤는데요. 5월 18일이 독일 Holiday랍니다. 부활절로부터 39일이 지나서 5월 18일이 ‘주님 승천 대축일’이랍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 동네 도서관과 마트도 다 쉬었대요. 근데 분명 2주 전에도 노동절이라 Holiday였거든요? 중요한 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정도만 기다리면 또 Holiday라는 겁니다. 이번엔 부활절로부터 50일이 지나서 쉰대요. 이곳은 노동절, 신정, 통일 기념일을 제외하면 모든 휴일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전 레터에서도 언급했지만, 관광객과 체류자 입장에서 휴일이 그렇게 좋을 건 없습니다. 불편한 것만 많고요.


그러나 이 나라에 이렇게 휴일이 많은 이유가 단순히 Jesus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중심에서, 한국인 두 명은 젤라토 두 스쿱을 먹으며 이 나라의 휴일 제도에 관해 토론했는데요. “노동자에게 적정 휴일을 제공하는 것이 나라의 성장과 출생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논리를 국가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휴일이 많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까지 합계 출생률 하락세를 보였지만, 2007~2008년 이후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합계 출생률 반등세를 보였습니다. 물론 이민 정책을 비롯해 다양한 인구 정책을 시도하는 나라이기에 단순히 ‘적정 노동시간’ 때문이라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사람들도 아이를 한 둘씩 낳고 살아가는 이곳에 와보니 알겠습니다.



한국의 노동 시간은 그대로 둔 채로 유럽 국가의 인구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건 상당히 비현실적입니다. 인수분해를 못 하는데 미적분 강의를 듣는 것만큼 답답한 일인 듯합니다. 유럽의 무언가를 따라잡고 싶거나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노동 시간부터 따라가야 합니다. 그게 근간이고 기초 공사거든요. “어떻게 매주 노동 시간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싶지만, 저는 이곳에서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 얽히고설킨 수많은 문제의 중심에는 각박한 노동 시간이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맨날 독일 노동 시간에 대한 칭송만 한 것 같으니 대도시 ‘프랑크푸르트’도 묘사해 볼게요. 베를린은 아직 가보지 못해 서울과 일대일 비교하기 어려우나 프랑크푸르트는 부산과 유사한 점이 많은 도시입니다.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점도, 유럽 중앙은행이 이곳에 있어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인 점도, 유럽의 허브 공항을 보유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어디를 가도 워커홀릭들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게 한국의 노동시간이 이대로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요) 맥주를 마시면서도 노트북을 두들기는 사람들이 보였고요. 프랑크푸르트에는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초고층 건물도 많이 보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돈 좀 굴린다는 사람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겠다는 느낌을 강력히 받았죠. 그래서인지, 슬프게도 제가 가 본 독일 도시 중 가장 동양인이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지인은 젤라토 콘을 부숴 먹을 때쯤,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 노동 시간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요.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적정 임금이 보장되어 있다면, 우리는 능동적으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곳에도 한 주에 30시간만 일하는 대신, 평생 독일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반대로 한 주에 52~60시간 정도 일에 몰두하며 돈을 버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나의 선택권을 박탈시킵니다. 선택을 강요받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게 곧 성공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파다합니다. 물론 이런 차이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땅덩어리’ 크기이기도 합니다. 독일은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적고 자원이 넉넉하기에 꼭 경쟁에서 이겨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도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개인의 선택권을 박탈시키면서까지 빨라야 하나? 달려야 하나?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꾸려나갈 자유를 박탈당하는 순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전에 지인에게 추천받았던 책의 구절 중 하나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30시간 일해도 남들과 비교 안 하며 잘 살 수 있는 한국을 위하여, Prost! (독일어로 건배라는 뜻입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삶이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게 분명하다.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그만큼 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더욱 건강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어느 정도 시간 안에 처리해야 좋은지 하는 물음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업무량의 정도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근심 걱정에 시달리며 위궤양을 앓는 사람은 항상 바쁜 경영자가 아니라, 쉬지도 않고 이런저런 지시를 해대는 상관에게 시달림을 받는 부하 직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中


작가의 이전글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