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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Mar 29. 2024

숨고 싶은 마음

새끼 고양이, 박연준

새끼 고양이 / 박연준



들키고 싶었어요

지붕 위에 오래 앉아

지난밤 꿈이 탈색되는 걸 바라보았죠

눈이 가늘어지고, 수염이 팽팽히 서고

점프해서 멀리

날아가는 상상도 못한 채

마음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었죠

들키고 싶어서


전깃줄을 타고 건너다니는 봄,

비밀은 너무 가볍거나 무겁죠

몇 번 웃어버리고 나면 얇아져요


머리를 누르는 건 모자가 아니죠

견고한 빛의 무게,

태양이 떨어뜨린 살비듬


매일이 환한 낮잠 같아요

가끔 담벼락을 손으로 짚고

울며 가는 사람을 볼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죠


이봐요, 이번 생의 그림에선

파란 바탕이 나예요

당신이 울고 지나간


박연준,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문학동네, 2012년, 96~97쪽      

[출처] 새끼 고양이 - 박연준|작성자 이래춘

출처 (https://blog.naver.com/olbom/223133093262)



얼음을 주세요/ 박연준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 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 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 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출처 (https://ksd8988.tistory.com/16907637)



박연준의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 <얼음을 주세요>였다. 감각적이고 아기자기한 시어 이면에 어떤 무거운 이야기를 잘 써낸다고 생각했다. 느낌이 달려라 아비를 쓴 김애란 작가를 떠올리게 하며, 왠지 모르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박연준의 시는 내게 몽글몽글한 노란 계란찜 같은 텍스처를 내게 느껴지게 한다. 대학교를 다니던 당시에 박연준 시인을 알게 되어서 검색했더니 새끼 고양이란 시가 나왔다. 그건 내게 운명 같은 일이었다. 난 그 시를 나와 꽤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치료라는 수업 때 저 시를 발표하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발표했다. 그 당시 교수님은 내 해석이 기존의 시 해석의 결과 정말 다르다는 표정으로 "아, 그렇군요! 수업에 큰 자료가 되어줬군요. 정말 그런 게 가능한가 했는데 가능하군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난 내 경험을 토대로 해석했고, 교수님은 많은 작품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하셨던 것 같다.


난 참고로 새끼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길거리에 나른하게 앉아있는 고양이를 찍는 일은 좋아한다. 가령 서점을 좋아하고 책 사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책은 잘 읽지 않는 내 오랜 습관처럼 말이다. 그리고 새끼라는 어감이 되게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에서 새끼 혹은 개새끼는 부정적 의미지만 새끼 고양이나 새끼손톱 이런 의미는 활자로 보면 더 귀엽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여튼 난 이 시의 제목이 처음부터 귀엽다고 느껴졌다.


들키고 싶었어요

지붕 위에 오래 앉아

지난밤 꿈이 탈색되는 걸 바라보았죠

눈이 가늘어지고, 수염이 팽팽히 서고

점프해서 멀리

날아가는 상상도 못한 채

마음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었죠

들키고 싶어서


첫 구절부터 마음에 들었다. 뭔가 선언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들키고 싶었어요. 지붕 위에 오래 앉아. 지난밤 꿈이 탈색되는 걸 바라보았죠. 전지적 고양이 시점에서 보니까 꽤 신선하고 재밌었다. 고양이의 보은이란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양이는 눈이 가늘어지고, 수염이 팽팽히 설 때까지 지붕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고양이가 바라본 '지난밤 탈색된 꿈'이란 무엇일까. 아직 짐작하기 어렵지만 고양이는 그 때문에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며 그 대상에게 들키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고양이였을까.



전깃줄을 타고 건너다니는 봄,

비밀은 너무 가볍거나 무겁죠

몇 번 웃어버리고 나면 얇아져요


머리를 누르는 건 모자가 아니죠

견고한 빛의 무게,

태양이 떨어뜨린 살비듬


전깃줄을 타고 건너다니는 봄. 고양이가 전깃줄을 타고 다니는 걸까 생각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전깃줄에는 끽해야 참새나 앉아있겠다. 아무래도 고양이 시점으로 흘러가니까 봄을 고양이화 한 듯하다. 그리고 비밀은 너무 가볍거나 무겁다고 한다. 몇 번 웃어버리고 나면 얇아지는 비밀이라. 시인이 말하고 있는 비밀의 특성에 되게 공감이 간다. 비밀이라는 것은 말할 때 무겁고 진중하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쉽고 가볍게 멀리 퍼지기도 한다. 그렇게 퍼진 비밀은 남의 이야기라 하하 호호 웃으며 가볍게 흘려보낼 얄팍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문이란 것은 아주 무거운 비밀도 가볍게 나르다가 발생하는 일이다.


머리를 누르는 건 모자가 아니죠. 견고한 빛의 무게와 태양이 떨어뜨린 살비듬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아마 실제로 쓴 것은 모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봐도 모자일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그것은 견고한 빛의 무게와 태양이 떨어뜨린 살비듬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모자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진실을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그 속에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가 있음을 말이다. 우리가 듣는 소문 이면에는 어떠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이 환한 낮잠 같아요

가끔 담벼락을 손으로 짚고

울며 가는 사람을 볼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죠


이봐요, 이번 생의 그림에선

파란 바탕이 나예요

당신이 울고 지나간


매일이 환한 낮잠 같아요. 매일이 꿈같다는 말일까.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단 말일까. 매일이 환한 낮잠이라면 난 행복할까 불행할까 궁금해졌다. 가금 담벼락을 손으로 짚고 울며 가는 사람은 어떤 일로 담벼락을 짚어야 할 정도로 휘청이고 있는 것일까. 고양이는 그렇게 지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이번 생의 그림에선 파란 바탕이 나예요. 당신이 울고 지나간."


당신이 울고 지나간 파란 바탕이 고양이 자신이라니. 당신의 눈물과 그리고 슬픔에 동화된 것일까. 무료해 보이고 나른해 보이기까지 한 담벼락 위에 고양이가 사실은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의 속마음 이면을 속속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이 시를 대학생 때 좋아했던 이유는 제목이 귀엽기도 하고, 저 전반에 표현된 '낮잠' '살비듬' '빛의 무게' '비밀' '봄' '파란 바탕' 등의 단어들이 주는 보드라움과 마지막으로 5연의 저 고양이의 대답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 곱씹으니까 도대체 고양이가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당신이 그린 이번 생의 그림에서 파란 바탕이 자신이란 것은 자신이 든든한 벽이라도 해주겠단 말인가.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대학생 때 문학치료 수업 때 내가 뭐라고 해석하고 발표했는지 아주 새까맣게 까먹었다. 그래도 작은 단서라도 있다면 난 이 시를 말이 없고 숨어 사는 나에 대입해서 읽었단 것이다. 1연은 뭐 여기 웅크리고 있는 것은 들키고 싶어서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특히 카페에 친구들과 놀러 가면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서 그런 나를 들키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했을 것 같다. 그리고 지난밤의 꿈이 탈색되는 것은 말없이 웅크리고 있어야 할 나의 불행과 스트레스를 빗대어 말했을 게 분명하다.


전깃줄을 타고 건너다니는 봄, 비밀은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 몇 번 웃어버리면 얇아진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처럼 비밀은 살금살금 전깃줄을 타고 멀리 퍼지지 않을까. 비밀은 말할 땐 무거워도 퍼지면 한없이 가벼우며, 타인에 의해 쉽게 웃음거리로 전락할 정도로 얄팍한 것이다. 고양이 시점에서 인간의 비밀이란 아무 쓸모도 없지만 그들의 불행을 한 발짝 떼서 관조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 새끼 고양이처럼 가만히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것이다.


과연 매일이 환한 낮잠 같아요. 이것은 고양이가 실제로 담벼락 위에 나른하게 낮잠을 자는 상황 같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인생이란 매일이 환한 낮잠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매일 환한 낮잠은 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지옥 같은 상황일 것 같다. 분명 따뜻하고 아늑한 단어인데 묘하게 마냥 행복할 것 같지는 않고 아슬아슬한 전깃줄 위를 누비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기서 정확하게 기억나는 포인트는 나는 저기서 울고 지나가는 사람을 고양이와 동일시했고 결국 나와도 일치시켰다. 나의 마음이 항상 울적하고 울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저 사람에 투영시킨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행은 이렇게 해석했다. 고양이가 말한 '이번 생의 그림에선 파란 바탕이 나예요. 당신이 울고 지나간.'은 당신의 우울한 마음을 파란 바탕이라 말했다 여겼고, 그래서 고양이가 바로 저 울고 지나간 사람이라고 여겼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고양이가 어떻게 우울할까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고양이도 담벼락에 앉아 무료하게 있는 것이 우울해서 저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 고양이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는 그런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연만 거의 일치하는 것 같고 나머지 연에서 해석한 것은 대학생 때와 일치하는지는 확신치 못하겠다. 그래도 그때 당시 꽤 애정해서 이 시를 고민 끝에 골랐던 것도 기억난다. 근데 아무리 다시 읽어도 마지막 대사는 감동이다. 당신이 울고 지나간 파란 바탕이 나라니. 혼자라고 생각했을 그 사람에게 여기 작은 새끼 고양이 하나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위로라는 것이 꼭 말로 보듬어주지 않아도 곁에 누군가의 체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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