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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Mar 30. 2024

기린이 되고 싶었던 나

차갑지만 따뜻했던 아이스크림의 기억

기린과 나

   김지녀

순간, 기린의 눈과 마주친다
큰 나무의 나뭇잎을 절반쯤 뜯어먹은 기린 앞에서 나는 벌써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웠다
땡볕에서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기린을 보며
나는 기린의 목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 배가 참 부르다고 생각한다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금방 기린의 얼룩무늬에 잡혀 사라진다 사르르 배가 아프다 동시에,
까맣고 큰 눈동자로 기린이 나를 보며 씹는다 계속

껌벅이는 눈, 기린이 긴 혀로 날름거리며 나를 핥고 있다 나는 콧등에서 발등까지 순식간에 흐물거리다 녹아내린다
이것은 적도가 내 몸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
한 차례 소나기 후, 오후가 끈적해졌기 때문

날마다 목이 마른 건 기린이 아니야
기린의 참을성은 믿을만하다
초원의 저 끝에서 마른 풀을 쓸며 불어오는 바람에 입술을 대고 쪼그려 앉아 또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이렇게 외치는 건 기린이 아니야
그늘이 점점 작아지는 큰 나무, 나뭇가지에 목을 기대고 기린은 단지 먼 곳을 바라보다 잠깐씩 졸다

오늘은 흘러내리는 기분, 바람이 불 때마다
기린의 긴 목에서 마른 풀 냄새가 피어오르고 나는 아무도 없는 창밖을 보다
다시 푹신한 소파에 누워, 희미해지도록
멀뚱히 기린이 바라보고 있는
한낮의 지평선
한통의 아이스크림


계간 『문예중앙』 2007년 가을호 발표

출처 (웹진 시인광장 https://blog.naver.com/w_wonho)




기린과 나


왜 시 제목이 기린과 나일까. 철이와 미애라는 말이 떠오른다. 근데 기린도 동물 중 한 개체를 대표하는 말이고 나라는 말도 이름이 아니라 자신을 가리킬 때 대표적으로 쓰는 말이다. 뭔가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면서 모호한 말 같다. 그리고 기린의 노란 이미지와 나의 ㄴ이 노란을 연상시킨다. 기린과 나의 상관관계를 시인이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지게 하는 제목 같다. 


순간, 기린의 눈과 마주친다
큰 나무의 나뭇잎을 절반쯤 뜯어먹은 기린 앞에서 나는 벌써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웠다
땡볕에서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기린을 보며
나는 기린의 목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 배가 참 부르다고 생각한다


순간, 기린의 눈과 마주쳤다고 화자는 서술하고 있다. 앞에 순간과 쉼표가 붙음으로써 되게 긴박한 상황임을 잘 나타내는 것 같다. 나도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어떤 사람과 바로 눈 마주쳐서 화들짝 놀란 그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서 화자는 놀란 것 같지 않고 그저 태연하게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웠다고 한다. 기린도 앞에서 큰 나뭇잎을 절반쯤 뜯어먹는 먹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기린의 목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 배가 참 부르다고 생각한다. 정말 의식의 흐름이며 화자에게 어떠한 긴장감이나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나른하고 배가 부른 한 여름의 오후를 떠올리게 하는 시의 구절이다.


여기서 나타난 기린과 나의 공통점은 무념무상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아무런 생각 없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먹고 있는 것이다. 기린의 목이 원래 길다는 것을 알지만 새삼스럽게 화자는 길다고 말하고, 아이스크림 한 통 다 먹고 배부른 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굳이 배가 참 부르다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당연하고 어떤 의도도 없으며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상태 같다.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금방 기린의 얼룩무늬에 잡혀 사라진다 사르르 배가 아프다 동시에,
까맣고 큰 눈동자로 기린이 나를 보며 씹는다 계속


화자는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과 어느 작은 방구석에 사는 화자가 티브이 화면 속에 같이 공존하고 있다. 물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자 기계인 텔레비전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자는 사르르 배가 아픈 것이 까맣고 큰 눈동자의 기린이 나를 보며 계속 씹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을 마치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뭔가 내게 익숙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의 흰머리는 할아버지부터 내려온 유전인데 딸들이 속 썩여서 그런다고 연관을 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 속에 갇힌 기린과 나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각났다. 백남준의 아트처럼 기린과 나라는 시의 분위기도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시 속의 기린과 화자는 굉장히 성격이 닮아있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태어난 김에 산다, 목적 없이 산다, 의식의 흐름대로 배고프면 먹는다. 되게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그들의 삶을 내가 브라운관으로 엿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껌벅이는 눈, 기린이 긴 혀로 날름거리며 나를 핥고 있다 나는 콧등에서 발등까지 순식간에 흐물거리다 녹아내린다
이것은 적도가 내 몸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
한 차례 소나기 후, 오후가 끈적해졌기 때문


나는 이 시를 보면서 김지녀 시인이 이미지 치환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린이 브라운관이 비친 나를 핥아먹다가 어느새 화자는 화자가 먹은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렸다고 표현한다. 아까는 화자가 포식자가 되어 아이스크림을 잡아먹었다면 이번에는 브라운관 속의 기린이 포식자가 되어 화자를 잡아먹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를 '적도가 내 몸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도 부근은 온도가 높아 기류가 상승하므로 기압이 낮아진 남반구와 북반구의 아열대고압대 사이에 있는 저압대 즉 열대저압 대라고 한다. 그래서 북반구의 북동 무역풍과 남반구의 남동 무역풍이 수렴하는 지대로 구름이 일기 쉽고, 그에 따라 국지적인 호우나 소나기가 내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 시를 찬찬히 보니까 화자는 지금 한여름이며 밖에서 더위에 지쳐 소나기가 퍼붓는 상황이고, 화자도 더위와 습한 공기에 많이 지쳐서 흐물거리며 녹아버린 상황 같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이 녹아버린 이유를 기린이 화자를 핥았기 때문이라고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는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향기 나는 사람' https://blog.naver.com/gerzang/221424288827)


마치 화자가 무기력하고 아픈 이유가 따로 있는데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음으로써 진짜 원인을 회피하려는 그런 무기력함으로 내게 느껴졌다. 화를 낼 기운도 문제를 찾아 개선할 의지도 화자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목이 마른 건 기린이 아니야
기린의 참을성은 믿을만하다
초원의 저 끝에서 마른 풀을 쓸며 불어오는 바람에 입술을 대고 쪼그려 앉아 또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이렇게 외치는 건 기린이 아니야
그늘이 점점 작아지는 큰 나무, 나뭇가지에 목을 기대고 기린은 단지 먼 곳을 바라보다 잠깐씩 졸다

그런 화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날마다 목이 마른 건 기린이 아니야. 기린의 참을성은 믿을만하다. 초원의 저 끝에서 마른풀을 쓸며 불어오는 바람에 입술을 대고 쪼글 앉아 또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고 외치는 것은 기린이 아니다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목이 마르다고 말하는 것은 화자이고 참을성 없이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운 것도 화자이다. 그리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외치는 것 또한 화자이다. 여기서 화자는 기린을 무심하고 욕심 없고 어떤 경지에서 해탈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가 생각하는 기린은 그늘이 점점 작아지는 큰 나무 아래에서도 초초해하지 않고, 그저 나뭇가지에 자신의 목을 기대고 단지 먼 곳을 바라보다 잠깐씩 조는 무념무상을 실천하는 부처 같은 존재이다. 


 이 연을 읽고 있으면 화자가 아주 강하게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도 세속적인 삶과 욕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어떤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기린의 무기력한 삶과 화자의 무기력한 삶의 안에 감정은 너무나도 다르다. 기린은 평온하고 화자는 초조하다. 물과 불처럼 서로 상이한 개념을 보고 있자니 시소라는 개념이 여기에도 관통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흘러내리는 기분, 바람이 불 때마다
기린의 긴 목에서 마른 풀 냄새가 피어오르고 나는 아무도 없는 창밖을 보다
다시 푹신한 소파에 누워, 희미해지도록
멀뚱히 기린이 바라보고 있는
한낮의 지평선
한통의 아이스크림


마지막 구절을 보니까 박민규 소설가의 카스테라가 떠오르기도 하다.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세상 온갖 잡동사니를 냉장고 안에 넣었더니 아무것도 아닌 카스테라 하나로 뭉쳐진 그런 신기한 소설이었다. 나는 한통의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한 통에서 섞이는 기린과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오늘 화자의 기분은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창밖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아무런 상관없는 기린의 긴 목에서 마른 풀 냄새가 피어오른다고 하였다. 화자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과 자신을 완벽하게 동일화한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창밖을 보다가 다시 소파에 누워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에 화자를 놓는다. 


그리고 멀뚱히 기린이 바라보는 한낮의 지평선과 자신이 다 먹은 한통의 아이스크림을 대치시키면서 그 둘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 짓는다. 기린이 나고 내가 기린이었다, 장자의 일장춘몽까지 떠오르게 하는 결말이다. 



나는 이상하게 한 여름의 매미가 울 것 같은 화사한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손석규가 극 중 누나와 같이 수박을 먹으며 수박씨를 뱉는 화기애애한 장면이다. 밥을 먹고 난 후 같은 저녁에 오누이가 도란도란 웃으며 떠들고 한쪽에서 선풍기가 덜덜덜 돌아간다. 그 장면이 손석규가 시한부인 것을 누나가 알게 된 후인지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극 초반에 손석규의 시한부 설정이 드러남으로써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이 다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그런 것처럼 나는 이 시에서 평화로운 듯 무기력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한여름의 화자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가만 보면 브라운관 속의 기린이 있는 아프리카는 쨍쨍하고 밝고 화자의 방은 소나기의 여파로 어두컴컴하고 습할 것이다. 이런 대비되는 상황을 전반에 깔려있는 아이스크림 이미지 때문에 더 모호하게 느끼게 된다. 어쩌면 화자가 스스로에게 치장한 공작새의 깃털처럼 아이스크림으로 범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한여름 오후 원룸에서 집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드러누워 새파랗고 하얀 구름이 낀 하늘을 멍하니 본 적이 있다. 나는 시 속의 화자가 한여름에 방에서 멍하니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서 문득 나를 투영시켰다. 나도 그때 화자처럼 흐물흐물 녹아서 일어나기 힘들었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기린과 나>라는 시가 주는 느낌이 참 마음에 든다. 화자가 아픈 것 같기도 하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그 시간을 묵묵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 속의 장면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처절해서 아름답지가 않다. 그것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아름답기 때문에 화자가 브라운관 속 기린을 계속 쳐다보는 것처럼 나는 계속 시를 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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