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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Apr 01. 2024

버거킹에서 11,300원을 쓴 날

장정일 시인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장정일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5 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5개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1/4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 소스 약간

브라운 소스 1/4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이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 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한 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놓는다.

소리 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네 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 된 고기를 올려놓고 일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일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에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치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치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수록


출처(https://nam-sh0302.tistory.com/m/15712842)



장정일 시인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에 대한 멋진 분석은 출처를 남긴 곳에 적혀있다. 나는 그저 우연히 엄마랑 대화를 하다가 '김경일'심리학자를 떠올리지 못해 '장경일'이란 시인이 있을 것이라고 엄마에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그 이름이 시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안 나와서 '햄버거 명상' 검색하니 시인의 이름은 '장정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연하게도 대학생 때 들은 베스트셀러 수업 교재였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마침 내가 오늘 버거킹에서 새우와퍼 세트를 먹는다고 11,300원을 썼다. 배달비는 미포함 가격이다. 아무튼 시집에는 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나는 그냥 책 제목에 떡하니 있는 시를 골랐다.


햄버거를 두고 명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흔하디 흔한 패스트푸드이며 식사이기 때문에 명상을 한다는 것은 내게 돼지를 잡아두고 이름을 붙여주며 방안에 키우는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1962년 생인 장정일 시인과 1987년에 출간된 이 시집에게는 좀 낯선 이름이었을까. 아빠와 비슷한 연배이기 때문에 내가 아빠에게 들은 획기적인 음식은 군대에서 처음 먹은 비싸고 맛있는 바나나라고 하였다. 그 또한 지금은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이며, 아빠가 바나나를 말할 때 마치 허니버터칩 품절란 때 그것을 영접한 듯한 톤으로 말하는 게 신기했다.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금은 꽤 가치가 높은 자산이었을 것이다. 돌반지를 금반지로 많이 하던 것이 그 당시의 유행이라고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리고 꿈이란 시인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어떤 자리 혹은 열망을 나타낼 것이다. 그 뒤에 나온 말이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의 꿈은 얄팍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단단했나 보다. 그렇게 단단한 것들만 취급하던 그가 이제는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렁물렁하다면 바로 떠올리는 것은 살이고 뒤이어 햄버거의 빵도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뭔가 단단한 것은 금욕적이고 고지식할 것 같은데 물렁물렁한 것은 마요네즈처럼 부드럽고 치명적일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과연 화자는 전에는 안 이랬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변했을까, 계기가 무엇일까, 되게 알고 싶어 진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화자는 햄버거를 만들면서 어떤 명상에 들어가려고 한다. 과연 우리 아빠가 밥을 다 먹어서 쌀을 안칠 때 저런 명상을 할까, 하니 대답은 아니오였다. 시인과 아빠의 연배가 비슷하다 보니 자꾸 아빠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아빠는 30년간 장기근속 한 되게 근면성실하며,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는, 등산을 좋아하는, 배 나온 아저씨다. 우리 아저씨는 어떤 결괏값이 바로바로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저런 사색을 즐겨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무튼 화자는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 아주 쉽고 간단해서 '명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단 화자는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아니라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족속은 패거리에 속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어쩌면 화자는 대한민국 땅에 햄버거가 생태계 교란종 늑대거북이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뭔가 맛은 있고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쉽고 간편하게 소비하는 것에 대해 지양하고 싶은 시인의 심리가 저렇게 조그맣게 불쑥 튀어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 빵 2

버터 1.5 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5개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1/4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 소스 약간

브라운 소스 1/4컵


일단 이 3연을 보고 있으면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대학 시절 배웠던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절대 이념을 거부하는 탈이념이란 것으로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나오는 변기가 기존의 개념을 탈피해 새로운 전시품이 될 수 있었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또한 비디오를 재생해서 본다는 개념을 벗어나 많은 비디오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해 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으로 이렇게 햄버거 레시피도 시의 한 구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떠올랐고 분명 대학 수업 때 이 단어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떠오르는 반면 자꾸 보고 있으니까 실제로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리를 내 마음대로 해서 수많은 괴작을 탄생시켰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 전적이 있다. 그 뒤로는 요리를 하기 전에 레시피를 꼭 찾아보고 그들이 말하는 순서와 양을 되도록이면 지키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 저 레시피를 보고 있으니까 뭔가 탐난다. 근데 나는 이 시에서 '상치'가 블로그의 오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1988년 표준어가 개정되기 전에 상치가 맞는 표현이었다는 것이라 매우 놀라웠다. 그와 연관되어서 우리 아빠가 카톡방에 맨날 설겆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빠! 설겆이가 뭐예요. 설거지가 맞는 표현이에요!'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설겆이 또한 옛날에는 쓰였으나 지금은 바뀐 표현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브라운 소스가 뭔가 검색해 보니까 경양식에 많이 쓰는 소스였구나 싶었다. 아니 소스 이름이 떡하니 색깔로 브라운으로 명칭 되어 있길래 이것도 옛날 음식인가 싶었다. 가령 레드 소스나 옐로우 소스 같은 것은 없나 싶기도 했다.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내가 여기까지 쓰고 지금 느낀 것이 있다면 이 시는 생각보다 길다는 사실이다. 햄버거가 크기에 비해 고칼로리인 것처럼 이 시도 햄버거 레시피가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내용에 비해 길이가 긴 것 같다. 화자는 지금 햄버거 레시피를 선전하고 있는 듯하다.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만들기 쉬운 방법을 강조함으로써 햄버거가 낯설고 어려운 음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이런 말도 시장에서 파는 것은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고 번거롭다는 것의 대척점에 있는 현대의 문물 '슈퍼'를 선전하는 느낌이다. 특히 '모든 것이 비닐 속에 담겨 있다'라는 문장 안에 '위생'과 '안전'이 두 번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의 문물과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가 되게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이 만연하면서 동시에 딱딱하고 인위적인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이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 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처음 이 시를 봤을 때는 길이만 긴 시 같았는데 사이사이에 이런 멋진 표현도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다지면서 잡념을 떨쳐라, 이 첫 단계는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고 한다. 칼에 손이 잘리지 않도록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어마어마한 가정이 들어가 있다. 명상과 집중을 포기하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당신의 손을 앗아갈 것이란 내용을 되게 유쾌하게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한 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놓는다.

소리 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 시 전반에 깔린 분위기는 유쾌함 같다. 요리되어 가는 과정을 언어로 표현한 것을 읽다 보면 실제로 눈앞에 잘 정돈된 쿡방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소리 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 같은 표현을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곧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란 가벼운 흥분으로 요리하는 사람의 맥박이 빨라질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시인은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흥미가 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무시하다. 흥미가 없다면 선뜻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뭔가 흥미에 아무 큰 의미와 거창한 해석이 존재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흥미를 없다면 명상이란 기다림도 없을 것이며 햄버거란 한 접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아서 새로운 공간 속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탐닉한 적이 있다. 고소하고 진한 커피 향으로 가득한 카페와 잔잔하게 깔린 재즈풍 음악은 나를 그 세계에 존재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이것도 멋진 표현 중 하나 같다. 반죽이 골고루 섞이도록 손으로 치대는 일과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을 비슷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둘 다 우리가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시인의 말에 되게 놀랍기도 하며 공감하기도 하였다. 음식을 먹는 일이나 섹스를 하는 일이나 모두 행복하고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촉감하면 어릴 적 살던 아파트 앞마당이 떠오른다. 비가 오면 진흙이 말랑말랑해지는데 그것을 손으로 잘 조물딱거리면 푸딩처럼 촉감이 통통 튄다. 내게 잊히지 않는 촉감은 그것이다. 아니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던 내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머그잔을 꼭 쥐는 그런 온도 또한 좋아한다. 촉각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네 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 된 고기를 올려놓고 일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일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에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계속 시를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시인이 햄버거 레시피와 명상이란 행위를 교묘하게 잘 접목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치대야 하며, 겉면을 각각 1분씩 지진 다음 은근한 불에서 속까지 익혀야 하는 등의 지침서를 시인은 안내해주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왜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고 말할까. 마치 앞에서 봤던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에 담겨 있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근대화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한데 뭔가 긍정적이 보다는 약간의 비꼼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여기서도 재밌는 표현이 있다.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라는 구절이 있다. 마치 한 사람의 머리가 잘 반죽된 햄버거 패티인 마냥 표현한 것이 재밌었다. 일단 햄버거를 반죽을 구울 때에는 오로지 햄버거만 생각해야 하며, 겉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 같다. 그토록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뜻 같다.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치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반쪽 남은 양파를 고리 모양으로 써는 일도, 오이를 엇비슷하게 써는 일도, 상치를 씻는 일도 모두 명상의 일환이다. 그리고 시인은 햄버거를 만드는 명상이 명상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명상이 가만히 앉아 눈 감고 음악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임에 반해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요리하는 명상은 조리 과정 중에 요리하는 사람이 요리에 깊숙이 빠져들고 몰입하는 과정 같다.


여기서 햄버거 과정이 단순해서 이런 명상을 하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조리과정이 복잡해도 그 긴 과정에 푹 몰입한다면 그 역시 여기서 말하는 '명상'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일이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치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계속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과 명상이 하는 과정을 겹쳐서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행이 아주 마음에 든다.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처바른다는 말이 주는 말맛과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한다는 그 의미가 내 시선을 잡았다. 뭐든 성질 급하게 하면 될 것도 잘 안 된다.


이걸 보고 있으니까 김태리 배우가 나온 리틀 포레스트가 떠오른다. 아주 잔잔하며 싱싱하며 나른한 그 분위기가 문득 이 시에서도 느껴졌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길고 긴 레시피가 언제 끝날까 했더니 드디어 끝났고 명상도 끝난다. 유익한 명상이라고 시인 스스로 극찬하고 있다.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끝은 상당히 허무하다. 처음 읽은 그 느낌 그대로 레시피가 끝나니까 결말을 맞이했다. 중간중간 재밌는 표현도 있었는데 끝이 나니까 결국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심오한 뜻이 있다기보다 새롭게 들어오는 자본주의에 대한 명상일까. 아니면 레시피라는 텍스트를 하나의 시로 승화시킨 새로운 시도였을까.


뭐가 되었든 시를 처음 읽었을 때보다 시 자체가 말랑말랑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이미지도 없고 재밌는 이야기가 없어도 이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 시인에 대해 감탄하게 되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는 내게 한 편의 풍경 같은 시였다.


알쓸별잡이란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천문학자가 샴푸 뒷면에 나와있는 성분표를 천천히 읽으며 멍하니 있는 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시를 읽고 시를 읽는 독자도 나처럼 시 읽는 명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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