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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Apr 03. 2024

누렁이가 떠나간 밤

황인찬 시인의 물산

출처( 황인찬 시인의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카페에서 시를 읽어보았다. 그러나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내게 황인찬 시인은 흐린 눈으로 읽을 때 되게 이미지가 잘 떠올리지 않는 시인이다. 뭐랄까. 난 보통 시를 읽고 공감이 가거나 혹은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을 그릴 수 있는 시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내게 글자로 이루어진 세계 같다.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짜임이 아닌 것 같지만 저기 저 물산은 뭔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물산이 뭔지 잘 모르겠다. 물산 검색하니까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이라고 한다. 물산 장려 운동 뭐 이런 게 나오는데 뭐랄까 정말 그건가 싶다. 한자라도 써주면 '아, 그거구나.'라고 확신이라도 하는데 저건 뭐랄까 이영광 시인의 '물불'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출처(http://m.egbn.kr/view.php?idx=67412)


대학생 때 배울 때 교수님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했다. 잘라도 잘라도 잘라지지 않는 물이라고 네이버 지식백과가 친절히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사랑 앞에서 물이냐 불이냐 구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 한데 어우러져있는 게 중요하단 말 같다. 여기서 새삼 놀란 것은 태양에서 발생한 햇빛도 불이라며 버드나무가 물과 불로 키워졌다고 서술한 점이다.


그리고 뭐랄까, 저 시에서의 사랑은 50대의 산전수전 다 겪고 휴전한 우리 부모님의 사랑 같다. 20대 때 결혼해서 싸우느라 혼인신고를 결혼하고 한 달 뒤 했다는 얘기를 꽤 자주 들었다. 그리고 명절 가기 전 날은 부모님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싸우는 기념적인 날이다. 그런 엄마 아빠도 이제는 성질 내려놓고 산다. 엄마가 안 치워도 아빠는 구시렁대며 치운다. 아빠가 산에 자주 나가도 엄마는 유튜브 김창옥 선생님 강의에 빠져있다. 각자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가끔 서로 웃으며 대화하는 부모님이다.


아무튼 황인찬 시인의 물산이 지역 생산품이 맞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궁금해진다. 



물산


            황인찬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이고 개나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다

"슬픈 개는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행복한 개는 오른쪽으로 흔든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개의 꼬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공원에서, 학교에서, 주택가에서

홀로 걷는 개들과 목줄을 매고 걷는 개들

언제부턴가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줄 알고 무엇이 슬픈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얼결에 밥을 주고,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개는 자주 오른쪽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왼쪽으로 흔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꼬리와 온종일 걸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의 밤

잠들어 있는 개를 보았는데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도 퍽 슬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개의 꼬리를 일부러 보지 않게 되었다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슬퍼지니까

어느 날 밤비가 조금씩 내릴 때, 나는 작은 개집에 웅크리고 들어가

내내 잠들어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오른쪽으로 흔들어도,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다





출처( 황인찬 시인의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이고 개나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다

"슬픈 개는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행복한 개는 오른쪽으로 흔든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개의 꼬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공원에서, 학교에서, 주택가에서

홀로 걷는 개들과 목줄을 매고 걷는 개들

언제부턴가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줄 알고 무엇이 슬픈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난 '물산'이란 시의 담담한 말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맨 처음 우리 마을에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는 첫 줄부터 구전동화를 많이 떠올리게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별 특색 없는 말인데 특색 있는 듯이 말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밤마다 산책시키는 개들 많고, 거리에는 길고양이들이 넘쳐난다. 근데 시에서 저렇게 툭 말하니까 뭔가 더 그럴싸해 보인다. 마치 저 동네는 뭔가 특별해서 개들이 왼쪽 오른쪽 구별하면서 꼬리를 흔들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지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신호등이 언제 차도의 좌회전이 켜지도 언제 인도의 초록불이 켜지는 그 순서는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발견하는 규칙이다. 여기서 화자도 동네에 산책 나온 개나 길고양이를 허투루 보지 않고 자세히 유심히 관찰하다가 스스로 그들의 규칙을 발견해 낸 것이다. 단순히 오른쪽과 왼쪽이란 방향의 문제에서 더 파고들어서 개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신생아의 울음만 듣고 배고픈지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 구별해 내는 엄마처럼 말이다. 아무튼 마법 같은 순간이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저 시에서 가장 멋진 구절은 아무래도 '슬픈 개는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행복한 개는 오른쪽으로 흔든다.'이다. 마치 대학생 때 교수님이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다.' 그 말이 오버랩된다. 개가 어느 쪽으로 꼬리를 흔들면 어떠한가. 그냥 반갑다와 즐겁다의 표시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어떤 의미를 둔다. 마치 '왼쪽 귀가 가려우면 험담, 오른쪽 귀는 칭찬.' 같은 것처럼 말이다. 좌우는 세상에 거울과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개념 아닐까. 온 세상 사람이 장님이고 태양도 없다면 좌우는 있었을까. 아무튼 저 단순하고 기이한 연관성이 난 되게 마음에 든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얼결에 밥을 주고,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개는 자주 오른쪽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왼쪽으로 흔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꼬리와 온종일 걸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의 밤

잠들어 있는 개를 보았는데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도 퍽 슬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개의 꼬리를 일부러 보지 않게 되었다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슬퍼지니까


처음에는 개가 그저 관조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화자의 삶에 포함된 대상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개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얼결에 밥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며 정을 나누게 되었다. 과연 여기서 저 개는 진짜 개일지 아니면 화자의 연인일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화자는 개와 함께 살며 개의 감정표현을 보게 된다. 여기서 '자주 오른쪽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왼쪽으로 흔들기도 했다'는 말은 기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마냥 행복하기만은 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같이 산다는 게 그렇다. 결혼해서 한 집에서 살면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연인들도 가끔은 돈문제로 혹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게 보편적인 일이다. 그런 모습을 물산이란 시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상대의 기쁨과 슬픔에 일일이 지켜보고 반응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을 못 본 척 지나가기도 한다. 시에서 '잠들어 있는 개를 보았는데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도 퍽 슬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개의 꼬리를 일부러 보지 않게 되었다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슬퍼지니까'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랑하니까 그 슬픔까지도 전염되는 것이지만, 슬퍼지기 싫어서 상대의 슬픔을 외면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상대의 마음이 귓가에 들리지 않는 것은 꽤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슬픔 또는 당신의 기쁨은 당신의 것이란 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꽤 맞는 사실이란 생각도 동시에 든다.


연인이 되어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기쁨이 두 배가 될 수도 있지만 슬픔이 두 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산이란 시에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나 또한 물산이란 시의 화자처럼 상대의 표정을 일부러 읽지 않은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공감 가는 표현이었다. 



어느 날 밤비가 조금씩 내릴 때, 나는 작은 개집에 웅크리고 들어가

내내 잠들어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오른쪽으로 흔들어도,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온 개가 어느 날 밤비 내리기 전에 떠나버렸다. 처음 시를 읽을 때는 사람인 화자가 개집에 들어가 웅크린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개가 떠났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찬찬히 뜯어보니까 개가 떠나야만 그 빈자리에 화자가 웅크리고 잠들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몸에 맞지도 않은 개집에 들어가서 웅크린다는 것은 꽤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과거에 동아리 활동으로 무척 혼란스러웠을 때 욕조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화자는 '일어나, 일어나, 오른쪽으로 흔들어도,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다'라고 적혀있다. 어쩌면 이 구절은 화자가 화자 스스로에게 하는 혼잣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흔들어도'는 개의 꼬리가 오른쪽으로 흔든다는 것은 기쁨을 나타냈다. 화자와 개가 함께 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을 되잡아보려고 하지만 그의 상실감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사람이 개가 되는 한 인간의 쓸쓸한 내면'을 다룬 시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긴 하지만 '(헤어짐으로 인한) 사람이 개가 되는 한 인간의 쓸쓸한 내면'이란 서술이 더 정확할 듯 보인다. 저기 저 '일어나, 일어나' 그 구절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그 언젠가를 연상시키기 딱 좋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적이 없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헤어진 날은 눈이 펑펑 내려서 온 세상 사람들이 한옥마을에서 얇은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일요일의 아침이었다. 그날 나는 우리나라 특산주 감자주를 골라 사들고 집에 와서 물국수에 같이 먹고 헤롱헤롱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이 아무 일이 되지 않도록 계속 나한테 '일어나, 일어나'라고 했지만 그때는 나도 깨지 못했다. 시간이 좀 흘러가야지 자연스럽게 스스로 깰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정말 이게 이별시 연애시라면 제목 물산이랑 어떻게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지역에서 나는 생산품과 개가 되어버린 인간의 개인사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지역의 생산품이란 물산이란 말처럼 첫 구절이 우리 동네에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개나 고양이가 많다는 특징은 우리 동네에 여자랑 남자가 많다는 자랑이랑 별 반 다를 게 없다. 떠돌이 개나 목줄 맨 개는 사실 솔로인 인간 또는 결혼한 인간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물산이 지역의 특산품이라 말하고 있지만 시의 내용은 어느 지역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반어법으로 표현하고 있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사랑 혹은 이별이 굉장히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미 물산이란 제목부터 특산품이지만 그전에 물건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되게 공산품 느낌이 물씬 풍긴다. 우울한 이야기와 물산이란 제목이 주는 언발란스한 느낌이 되게 재미있다. 그리고 물산이란 시가 어느 쓸쓸한 인간의 자기 독백처럼 들렸다.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날 한 개를 데리고 와 사랑도 주고 마음도 주다 보니까 어느새 자신도 그와 똑 닮아진 있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이 시의 분위기는 쨍쨍한 날씨가 아니라 흐림이다. 비 오는 날의 꾸리꾸리한 하늘과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날 어둡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나에게 저 시가 그러했기에 나는 '물산'이란 시가 되게 좋았다.



처음 이 시를 읽고서 나는 어느 지역의 생산품 혹은 우리 마을에 많은 개와 고양이 중 개가 된 화자가 느끼는 공허함과 쓸쓸함에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나 자신 또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소속감보단 어느 회사에 들어간 부품이란 생각을 강하게 했던 적이 있다. 가령 회사 직원이 비정규직인 내게 '초파리 목숨'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을 던진 것은 꽤 큰 상처였다. 그래서 화자가 마지막에 개집에서 웅크려 개가 된 상황을 보며 처음에는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슬픔과 기쁨도 구별할 줄 알던 화자가 이지를 잃고 상실감에 젖어들었구나 했다. 나는 개인의 상실감으로 읽었지 그게 연애의 상실감으로 읽지 못했다. 


어느 쪽이 더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물산이란 시는 내게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았다. 이 시를 보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고,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개와 인간이 섞인 주인공도 떠올랐다. 그리고 한 인간의 비극이라 더 몰입하면서 보았던 것 같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한다. 이 시에서 개가 왜 화자를 떠났는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화자가 '이후로는 개의 꼬리를 일부러 보지 않게 되었다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슬퍼지니까' 이후로 개가 떠났다. 소통의 부재로 인해 개와 화자는 갈라섰고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불행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 


물산이란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고 메마른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단조롭고 특색 없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다 읽고 나면 묵직하고 회색빛 감정이 내게 전달되었다. 시가 내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불행이 담긴 시를 읽으며 되려 내가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영광 시인의 물불은 50대의 사랑 이야기라면, 황인찬 시인의 물산은 20대의 사랑 이야기 같다. 공통점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시가 은근 공통점이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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