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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May 17. 2024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안성덕 시인의 달달한 쓴맛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안성덕


입술을 칠한다 빨갛게

교차로 신호등 앞에 멈춰 선 그녀

룸미러 속에 낯선 여자를 그려 넣는다


새벽같이 주방 안방 건넌방 종종대며

조잘거리던 입

말갛게 닦고 싶은 걸까

아침이슬에 부리를 닦는 새처럼

입술 촉촉하게 적신다


미소까지 방긋, 그려 넣은 그녀

유아원 앞 칭얼대던 아이 볼에 뽀뽀하듯

출근부에 사인하듯

새하얀 티슈에 꾸욱 도장을 찍는다

채 못 말린 머리깃 연신 헤적인다


남전주전화국 네거리,

오늘따라 유난히 긴 빨강 신호등을 콕콕

찍어 바른 그녀

푸른 하늘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포르릉





<출처 안성덕 시인의 달달한 쓴맛, 모악 2018>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제목이 재미있고 궁금했다. 나는 과연 언제부터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대학생 때 엄마가 너도 화장해야지 하고 사준 화장품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되게 엉성하게 했고 또 하기 싫어했다. 왜 태어난 그대로의 맨 얼굴 위에 무엇을 칠해야 하는지 그때는 적응이 되지 않고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나간 내 맨얼굴이 더 낯설다. 꾸며지지 않은 초췌한 얼굴로 나가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어디 아프냐고. 나이가 먹으면서 얼굴의 노화는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찬찬히 시를 읽어보니까 안성덕 시인이 어린아이를 유아원에 데려다주고 차 타고 돌아가는 애엄마의 모습을 귀엽게 잘 그려냈다. 박성우 시인이 시집에 대한 짧은 추천사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구간을 명민하게 잘 짚어내서 시로 써냈다고 말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진짜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에 허다한 장면인데 이렇게 짧은 한 순간을 잘 포착해서 안성덕 시인이 시로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전주전화국 네거리라던지 아니면 모악이라는 출판사 이름이라던지 곳곳에 전주가 깃들어 있어서 반갑고 또 친근하였다. 대학교 시절에 교수님으로 계셔서 언제나 호탕하고 즐거운 웃음을 짓던 그 미소도 머릿속에 선연하다. 이 시집이 출간되어 출간 파티에도 참석했었는데 지금에서야 시집을 펼쳐보는 것이 조금은 죄스럽기도 하다만 이제라도 보면서 그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입술을 칠한다 빨갛게

교차로 신호등 앞에 멈춰 선 그녀

룸미러 속에 낯선 여자를 그려 넣는다


입술을 빨갛게 칠하는 여자가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멋진 표현은 그녀가 '룸미러 속에 낯선 여자를 그려 넣는다'라는 표현이다. 마치 룸미러를 보고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가 그녀에게는 변신과도 같은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주부들은 집에서는 애를 돌보느라 미처 자신을 가꿀 여유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 등원시키러 갈 때는 신호가 걸리는 그 짧은 시간에 화장을 부랴부랴 한다. 왜냐하면 어린이집에 가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마주하는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주방 안방 건넌방 종종대며

조잘거리던 입

말갛게 닦고 싶은 걸까

아침이슬에 부리를 닦는 새처럼

입술 촉촉하게 적신다


'새벽같이 주방 안방 건넌방 종종대며 / 조잘거리던 입'은 새벽부터 애들과 남편의 아침을 차리며 그들을 깨워야 했던 그녀의 바쁜 아침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말갛게 닦고 싶은 걸까라고 시인은 궁금해하고 있는데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를 아직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갛게 닦고 싶은 것은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집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은 마치 '아침이슬에 부리를 닦는 새처럼/ 입술 촉촉하게 적신다'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새가 아침이슬에 부리를 닦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침이슬에 부리를 닦으며 자신을 단장하는 새가 있다면 그 새는 분명 부지런한 새일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시인은 그녀가 아주 부지런하게 꽃단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미소까지 방긋, 그려 넣은 그녀

유아원 앞 칭얼대던 아이 볼에 뽀뽀하듯

출근부에 사인하듯

새하얀 티슈에 꾸욱 도장을 찍는다

채 못 말린 머리깃 연신 헤적인다


'미소까지 방긋, 그려 넣은 그녀'라는 표현은 너무 공감이 갔다. 곧 어린이집 선생님을 볼 것이니까 화장을 마치고 미소를 방긋 지어보며 마무리 체크를 한다. 나도 거울로 얼굴을 확인하며 화장을 마치고 마지막에는 꼭 한 번은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화장이 잘 되었는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화장과 내 미소가 잘 어울리는지도 한 번쯤은 확인해보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유아원 앞 칭얼대던 아이 볼에 뽀뽀하듯 / 출근부에 사인하듯/ 새하얀 티슈에 꾸욱 도장을 찍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그녀는 습관처럼 아이를 데려다주며 볼뽀뽀를 해주는 자상한 엄마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니까 출근부에 사인하듯이란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 사랑과 의무가 담겨있는 일을 하러 그녀는 티슈에 립스틱을 꾹 찍는다. 왜냐하면 립스틱을 바르고 좀 과하다 싶으면 티슈로 도장 찍어내며 입술 색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채 못 말린 머리깃 연신 헤적인다'라는 표현이 이 모든 일에 화룡점정이 되어주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물기가 묻어있으니까 잘 안 마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머리를 헤적이면서 대충이라도 마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3중주가 너무 좋다. 안성덕 시인의 시는 일상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이렇게 감탄이 나오는 표현들이 숨어 있어서 귀엽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전주전화국 네거리,

오늘따라 유난히 긴 빨강 신호등을 콕콕

찍어 바른 그녀

푸른 하늘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포르릉


나는 남전주전화국 네거리,라는 표현도 구체적인 지명이라 되게 좋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빨강 신호등을 콕콕 / 찍어 바른 그녀 / 푸른 하늘로 가속페달을 밟는다'라는 표현은 아까 화장을 하던 여자의 분위기를 이어 빨간 신호등 대기시간이 긴 것을 저렇게 빨강 신호등을 콕콕 찍어 바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초록색 신호가 떨어졌는지 그녀는 '푸른 하늘로 가속페달을 밟는다'라고 하였다. 이 표현 역시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참신했다. 푸른 하늘로 가속페달을 밟는 기분은 무척 상쾌하고 시원하고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포르릉'이라고 하고 있다.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소리일 텐데 저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것일까. 어쩐지 귀여운 뽀로로와 크로롱이 섞인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시도 좋았던 것 같다. 작고 귀엽고 일상적이고 또 모두에게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시 말이다. 전에 우리 엄마에게 시집을 보여드린 적 있는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시인의 시는 너무 어려운데 이 시집은 공감도 되고 읽기도 쉬워서 좋다고 말이다. 그런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그때는 그렇구나 정도로 그쳤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모든 시가 어려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내가 이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되게 편하다와 동시에 귀엽다였다. 내가 좀 더 나이를 먹고 애엄마가 되면 더 공감하고 즐거워할 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 읽어도 이해가 잘 가고 또 아름다운 삶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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