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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1. 2023

너처럼 아이나 키우면 좋겠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 칼날처럼 다가왔다.

"나도 너처럼 집에서 아이나 키우면 좋겠다"
친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나에게 한다. 



20대의 마지막에 출산을 한 나에게는 아가씨 친구들만 가득했다. 그들이 예쁘게 꾸미고 출근을 할 때 난 후줄근한 옷을 입고 아이를 챙긴다. 그들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때 난 아이와 전쟁 중이다. 출산 전 '전쟁 같은 육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그 엄마의 모성애를 의심했다. 출산도 안 한 나 따위가 모성애를 들먹인 그 순간을 후회하며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육아는 항상 전쟁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출처:Pixabay


목이 늘어나고 아이 이유식 흔적이 있는 옷을 입다가 오랜만에 멋을 부렸다. 아이를 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저녁 길거리는 나에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입은 옷도 화장도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지만 발걸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가볍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다시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퇴근 후 피곤에 지친 직장인 친구들과 다르게 오랜만에 외출에 신난 애엄마는 활기가 넘친다. 남이 해준 밥도 그저 맛있고,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도 꿈만 같다. 


친구들의 직장생활 이야기에 다소 맘이 아리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즐거워했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직장생활은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부러움과 공허함 그 어느 중간즈음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말한다.


"나도 너처럼 집에서 아이나 키웠으면 좋겠다. 회사 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가 나에게 칼날처럼 다가왔다. 

상처받지 말자. 모르니까 한 말이다. 비꼬는 말도 상처 주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육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다. 내 머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 어느 순간보다 바쁘다. 순간적으로 내 몸 전체에 보호막을 만드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포장을 하기 시작한다. 날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다. 잠깐이라도 긴장으로 놓는 순간 나는 그 칼날을 친구에게 돌려주게 될지 모른다. 육아로 지친 나는 마음이 넓지 못하다. 



집에 오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 바닥에 바닥을 뚫고 내 마음이 내려가는 중이다. 그러나 곧 툭툭 털고 쓴웃음을 지어본다. 임산부인 나에게 스키장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으니까. 그들은 임산부에 대한 육아를 하는 엄마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뿐이다. 무지에서 나오는 말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를 배려하지 않음이 아니라 배려하지 못함이니까. 마음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겨주는 내 아이가 있다. 괜찮다. 이보다 소중한 게 무엇이 있을까. 속상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소심하게 속으로 다짐한다. '나중에 두고 보자. 니들 육아할 때 난 당당하게 놀테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친구들도 결혼과 출산을 했다. 육아라는 전쟁에서 버둥거리고 있을 때 나는 우아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워킹맘으로 살며 두 아이를 키워낸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사과를 한다. 그때 미안했었다고. 난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사람처럼 용서의 말을 건넨다. 몰라서 그랬으니 괜찮다고. 


반전은 아이의 사춘기가 다가오고 점점 아이가 나에게 멀어지는 이 순간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인생의 반복에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제는 내가 나를 키워보자. 내가 성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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