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Nov 16. 2023

영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어느 화창한 금요일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날씨 화창함

# 슬초브런치2기 5주 차 과제 5년 후의 나의 모습 써보기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저녁노을을 기다리며 가족 모두 각자의 할 일을 한다. 조용하지만 삭막하지 않고, 대화가 없지만 불편하지 않다. 무표정이지만 모두가 편안하다.

내가 항상 꿈꿔왔던 시간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그 어떤 단짝보다 잘 통했던 큰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 삶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난 더욱더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기 위해 일에 몰입했고, 아이는 엄마의 바쁜 시간 동안 자유를 누렸다. 애교 넘치던 둘째까지 사춘기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온 지금 우리 가족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처럼 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주변에서는 쉽게 말을 했다. 다 지나간다고, 그렇게 크는 거라고, 그 정도면 얌전하다고. 겪어보지 못한 이들의 조언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다. 지금 그들이 겪는 사춘기 또한 나와 다르니 이건 정답이 없는 일이다. 그저 아이도 부모도 묵묵히 기다리고 이겨내야 할 뿐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노트북 자판을 부드럽게 두드려 글을 쓰고 있다. 남편은 중간중간 내 글에 피드백을 해주며 소설책을 읽는 중이다.


고3 큰 아들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영국 여행을 준비하며 해리포터에 빠져들었다. 덩치만 큰 나의 첫 아가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서 어떤 지팡이를 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보다 더 심각한 모습으로 수능이 끝난 겨울 방학에 알차게 놀 생각을 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웃음이 피식 난다. 


중3 둘째는 여전히 형 주변을 기웃거리며 부비고 앉아있다. 언제쯤 책을 좋아하게 될까 나를 참 오래도 기다리게 만들었던 아이는 영국 여행을 앞두고 해리포터에 더욱 진심이다. 읽고 또 읽고 몇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줄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저 아이의 해리포터 사랑은 이제 나도 포기했다. 


두 아들의 표정이 심각했다가 놀랐다가 웃었다가 변화무쌍하다. 지팡이를 아직도 고르고 있는 것 같다. 다 사줘도 되는데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나도 즐기는 중이다. 180이 넘는 두 아들이 붙어서 지팡이를 심각하게 고르는 모습은 여행 준비에 있어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장난감 하나에 손이 떨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이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이번 여행은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 돈 걱정 없이 마음껏 하게 해 줄게.


긴 터널 같은 두 아이의 사춘기가 지나갈 동안 나는 아이들의 키보다 더 많이 성장했다.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도 넘쳐흘렀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슬퍼하지 않고, 나만 바라보며 달려온 결과다.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도전했다. 내 나이 이제 40대 중반에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오늘의 해가 진다. 하루의 끝에 바라본 나의 세 남자는 더욱 사랑스럽다. 내 삶의 이유가 되는 나의 가족. 내일 해가 떠오르면 떠난다. 내 아이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영국으로. 영어도 마음껏 써보고, 해리포터도 마음껏 즐기고 자유를 누리는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줄게.



매거진의 이전글 합격은 먼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