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파민의 시대인 요즘, 일주일 동안 모든 도파민을 끊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걸 왜 하는가? 그런 건 없습니다.
어떤 행위에 대해서 왜?를 질문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이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변하게 되면 행위 또한 변질된다는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합리화’의 먹이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특히 제 안의 합리화 머신은 그 성능이 매우 고약해서 무엇이든 집어삼키면 어떻게든 소화해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머신이 냄새 맡지 못하게 이 행위(이하 노파민)를 논리로부터 박박 씻어주어야 했습니다.
아무튼 노파민에서 금지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임 유튜브 포르노 넷플릭스 음악 정크푸드 음료 간식 SNS …
잠깐!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면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건? 그럼 코노 가는 것 까진 괜찮지 않을;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걸로 합니다.
합리화 머신은 이 정도로 고약합니다. 수백 미터 떨어진 피 한 방울의 냄새도 맡아내는 상어의 지느러미를 후려칠 정도로 합리화 머신이 논리를 찾아내는 능력은 뛰어납니다. 그러니 주의 해야 해요.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지난 일주일 간의 노파민 일상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심플
일상이 확 심플해져서 컨디션 기복이 작아졌습니다. 그래서 미루는 습관이 덜합니다.
만약 어떤 일을 미룬다고 해도 딱히 할 게 없습니다.. 대체로 하거나 안 하거나 양자택일이거든요.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기복이 적으니 스스로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집니다.
이게 하루를 시작할 때 기분을 꽤 좋게 해준답니다.
심심
사실 이것도 장점인 것이 어떤 일을 하다가 잠깐 딴 길로 새더라도 삼천포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기껏 간다는 딴 길이 청소나 정리정돈, 설거지, 분리수거, 산책, 천장 보기.. 뭐 이런 것들입니다.
벽이랑 천장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코딩이라도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요요
챌린지가 끝나고 다시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도파민 요요가 왔을까요?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고 했던가요. 비혼주의자가 결혼을 통해 자신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농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작한 노파민 챌린지가 끝나고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을 때 저도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껏 무차별적으로 소비해왔던 유튜브 등의 각종 콘텐츠들이 사실 재미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눌러보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았어요…
아무튼 큰 기대 없이 한 번 해 본 챌린지인데 생각보다 수확이 있었네요.
명분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명분을 만들어 내어 좋은 습관을 들이려고 해도 어느 순간 안 해도 되는 명분을 금방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매우 잘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가지고 있는 좋은/좋지 않은 습관들을 보면, 어떤 계기로 시작을 했든 시간이 지날수록 이유는 무색해지고 결국 하던 것은 계속 하게 되고 안 하던 것은 계속 안 하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매일 양치를 할 때 다들 어떤 생각으로 하시나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뭐.” 매일 똑같은 연습을 하는 김연아 선수가 했던 말입니다.
어릴 때 저는 양치가 하기 싫었습니다. 귀찮았습니다. 안 할 수 있으면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그냥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솔직히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밤 양치는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따라서 우리도 하루 3분 정도는 양치계의 김연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1^365~=37.8, 하루에 1퍼센트씩 1년 동안 37.8배 발전한다.'
결국 저는 하루 중 3분, 그러니까 약 0.2퍼센트 정도의 이 시간을 확장해보고자 노파민이니 뭐니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퍼센테이지가 아니라 뒤에 붙은 365겠지요. 습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습관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습관도 결국 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물체에는 관성이 있어 만약 방향을 반대로 바꾸고자 한다면 우선 멈추어야합니다.
일단 멈추어야 비로소 새로운 방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노파민 챌린지가 저의 일상을 잠시 멈춰준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습관을 만드는데 68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번 일주일 간의 경험으로도 긍정적으로 체감 되는 것이 꽤 있어 정도를 조절하면서 노파민 기조를 한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다음에 한 달 후기 혹은 두 달 후기를 회고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P.S. 사진은 일요일 오후 10시에 캡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