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하민유네 편지 2. 엄마가 딸에게
놀라움이 넘치는 유림이에게
이 편지를 롤러장에서 쓰고 있을 줄이야. 행간마다 네가 트랙을 돌고 와, 웃어 주고 말을 걸어서
잘 써지진 않지만 엄만 늘 그렇듯 애쓰고 있단다. 눈으로 널 좇으며, 머리로 널 생각하며,
손으로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지. 마치 엄마가 회사에 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널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롤러장 가자고 한 게 7살 때였나 보다. 공원에서 롤러 타는 사람을 부러워했지.
처음 타던 날, 얼마나 많이 넘어지던지. 너의 무릎과 엉덩이는 남아나질 않았어.
이리 쿵, 저리 쿵 타는 시간보다 주저앉아 있던 시간이 더 많았는지 몰라.
그런데도 넌 포기하지 않았어. 그렇게 롤러장에 몇 번을 오더니 이제 능숙하게 잘 타는구나.
과감하게 몸을 던져서 익힐 줄 아는 너와 달리 엄마는 몸치잖아.
넘어지는 널 보면서도 롤러를 타고 도와줄 수 없었어. 사실 6학년 때 한 번 타보고 바로 포기해 버렸거든.
도움 없이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즐길 줄 아는 네가 놀랍고 자랑스럽다.
몇십 바퀴 도는 것도 가뿐한 롤러, 접영까지 마스터한 수영, 발표회까지 했던 K-POP 댄스,
2단 뛰기도 잘하는 줄넘기, 벌써 2년 차가 된 복싱까지 말이야. 전부 엄마는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이야.
언젠가 엄마가 관심을 갖는다면 너를 선생님으로 모실게.
너는 손으로 하는 것도 얼마나 야무진지 몰라. 슬라임이며 만들기, 꾸미기, 너의 작품을 볼 때마다
멋지고 독특해서 감탄이 나오지. 엄마는 똥손라서 그런 데서 즐거움을 느껴 보지 못했거든.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요리는 얼마나 근사한지 조만간 밥도 혼자 차려 먹겠다 싶어.
벌써 네가 만들어 온 마라탕, 파스타로 저녁을 대신하기도 했으니 말이야.
샌드위치, 티라미수도 카페에서 사 먹은 것보다 맛있고 예쁘던걸.
엄마에게 없는 장점이 많은 너라서 우린 다르다 생각했나 봐.
날 닮지 않았구나, 이해하기 어렵다 하면서 너를 오해했거든.
심리 상담을 공부한 엄마 친구가 딸은 대부분 엄마의 어릴 적 모습과 똑같대.
그걸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부모가 많다고 알려줬지. 엄마는 친구에게 차마 그게 나라고 말을 못 했단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또 네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말이야.
너는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 샘이 많았던 나, 잘하고 싶은 나, 돋보이고 싶던 나였어.
비록 지금은 조금 포기하거나 감추며 살고 있지만, 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나 봐.
11살 라온이는 생각만 하고 포기했던 것을, 11살 유림이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시도하면서
의미를 찾아가지. 네가 얼마나 도전적이고 과감한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노력을 하면서 더 멋진 너로 나아가고 있거든. 지금처럼 너 자신을 사랑하고 믿으면 되는 거야.
엄마는 너 없으면 못 산다 했지만, 넌 엄마 없이도 잘 살 거라고 했지.
엄마가 잘 살라 말하지 않았냐며, 잘 살아야 하는 게 맞지 않냐며. 어려서부터 다부졌던 똑쟁이 유림이다웠어.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섭섭했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어. 감정적, 의존적인 것보다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게
살아가며 힘이 되는 건 맞으니까. 언젠가 네 곁에 내가 없다 생각하면 눈물 날 것 같지만,
저렇게 단단한 너라면 잘 헤쳐 나가리라 마음이 놓인다.
나와 같기도 하지만 다른 유림아, 너의 내일이 매일 기대돼. 또 뭘로 나를 놀래 켜 줄지,
용감무쌍한 너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거든.
특별하고 소중한 너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존중해 줄게.
엄마가 사랑하고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말아 줘.
엄마에게
엄마 편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
11살 때 엄마가 이랬는지 몰랐어.
내가 다 잘한다고 한 건 고마워. 근데, 그거 알아?
나도 못하는 게 많은 거? 운동 중에도 못하는 게 있어.
줄넘기도 잘 못하고 말이야. 공부도 딱히 잘하진 못해.
그리고 난 엄마가 부러워. 엄만 타자도 잘 치고 영어도 잘하고.
엄만 날 선생님으로 모시지만 난 엄마를 선생님으로 모실 거야.
비록 공부에 관심이 없지만 관심을 가져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