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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우니 Mar 09. 2024

백성들이 자신의 삶을 살게 하라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게 하고 수만 가지의 문물이 있더라도 사용하지 않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겁게 여기게 한다면 멀리 떠나서 살지 않을 것이다.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고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그것을 펼칠 일이 없다.     

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람들에게 다시 새끼줄을 매듭지어서 쓰게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자신이 좋아하는 집에서 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한다면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음소리 개짓는 소리가 서로 다 들려도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제80장)


  노자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노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극단적인 소국주의(小國主義)를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인(仁)이나 예(禮)로 다듬어진 정형화된 인간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질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정형화된 인간은 대답을 외우고 있다가 누군가 요구하면 뱉어낸다.

  이 장에서 노자는 자신이 먹는 것이 맛있고, 자신이 입는 옷이 멋지고, 자신이 사는 집이 편안하고, 자신이 사는 곳이 즐거운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가끔 나도 내가 하는 것이 원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것일까 헷갈릴 때가 많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잘했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서 또는 잘 보이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가정하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을까? 노자는 이 말을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사람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한순간도 끌려다니지 않을 때가 없다. 우리는 매 순간 경계(境界)에 끌려다니다가 충동적으로 살아간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안다면 조금은 덜 휘둘리지 않을까? 이런 사람이 바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천착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인(仁)이나 예(禮)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색오음(五色五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남이 만든 평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야말로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한다. 개인주의는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느 사회를 가더라도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 또는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괴리는 있게 마련이다. 이런 괴리는 개인의 감수성과 사회적 자율성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 괴리를 만드는 건 역시 사회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노자가 통치자인 侯王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 이유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몫이 결국 후왕같은 정치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한 번도 충고한 적이 없다.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百姓皆謂我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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