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善爲士者(고지선위사자) : 옛날 도를 깨달은 사람은
微妙玄通(미묘현통) : 그 통함이 지극히 오묘해서
深不可識(심불가식) :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夫唯不可識(부유불가식) : 그걸 알 길이 없지만
故强爲之容(고강위지용) : 굳이 그 모습을 그려보면
豫焉若冬涉川(예언약동섭천) :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두리번거리고
儼兮其若容(엄혜기약용) : 얼굴에는 엄숙함이 묻어있고
渙兮若氷之將釋(환혜약빙지장석) : 얼음이 녹는 것처럼 풀리고
敦兮其若樸(돈혜기약박) : 통나무처럼 도탑고
曠兮其若谷(광혜기약곡) : 계곡처럼 확 트이고
混兮其若濁(혼혜기약탁) : 흙탕물처럼 흐리다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 : 누가 능히 흙탕물을 가라앉혀 서서히 맑게 하고
孰能安以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 : 누가 능히 가만히 있던 것을 건드려 서서히 생동하게 할까
保此道者(보차도자) : 도를 깨달은 사람은
不欲盈(불욕영) : 채우려 하지 않는다.
夫唯不盈(부유불영) : 채우려 하지 않으므로
故能蔽而新成(고능폐이신성) : 옛 것을 폐하고 새로운 것을 이룰 수 있다. (제15장)
善爲士者는 '도'를 체득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유가의 君子에 대응한다. 노자가 그리는 道士의 모습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얼음이 풀리듯 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도를 깨달은 사람치고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노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굳이(?) 묘사해주고 있다. 신념이나 이념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거침이 없다. 유가의 군자는 이에 가깝다. 반면 도사는 확신에 찬 행동은 없고 코끼리 같이 머뭇거리고 원숭이처럼 두리번거리는 것이 누가 봐도 군자가 도사보다 멋있어 보인다. 왜 그럴까. 이런 행동양식의 차이는 판단의 근거로 뭘 보느냐에 달려 있다. 유가는 유명을 보고 도가는 무명을 본다. 사상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과 데이터를 만지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 둘 중 선택하라면 뭘 고를지 자명한 듯 보이지만 옛날에는 이 '무명'의 실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유명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에 끌렸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무명의 실체를 알았더라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머리로 알고 있는 거와 실제 데이터를 더듬어보는 거는 천지차이다. 우리의 인식체계는 감각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보다 기존 관념이나 개념이 먼저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마 에너지효율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데이터를 만지는 것보다 개념을 끌고 오는 게 훨씬 전력소모(?)가 덜하다. 자유로움은 그래서 힘이 많이 든다.
필자는 어려서 궁금증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것은 자라면서 점점 질문으로 구체화되어 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직장을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지와는 관계없었다. 그 질문은 내 삶의 의미와 관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거의 끝에 와있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필자에게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그 처음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는 이 '道'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놈이 이 '道'를 알고 싶어 했다니 말도 안 된다 싶지만 그 당시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걸 알고 싶으면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했어야지 생뚱맞게 인문대학에 들어간 것은 무슨 까닭인지. 당시 수학이나 물리과목 성적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고등학교시절 읽었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이 나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주었던 듯하다. 현대물리학으로 풀 수 없는 난제의 해답은 결국 동양사상에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말에 속은(?) 것일까. 결국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갔지만 어려운 漢字에 부딪히다 보니 '도'에 대한 탐구정신도 희미해져 갔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먹고살다 보니 '도'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늦은 나이에 혼자 자취하던 터에 집 근처에 사는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 있었다. 그와 술자리를 하다가 무슨 얘기 끝에 그가 두루마리 화장지 한 칸을 뜯어서 고등학교 때 배운 화학의 mol량을 적고 있었다. 그리고 언어에는 명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둥 여태껏 내가 쓰던 언어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던 거 같다. 그와의 술자리는 참 재미있었다. 그도 서울 올라와서 외로웠던 터라 그랬는지 내가 퇴근하기 무섭게 전화해서 '심형 퇴근했소?' 하는 말과 함께 술자리를 시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울산 살다가 처제 투병을 도와주기 위해 와이프랑 같이 서울에 살고 있는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처제는 언니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고 나도 몇 년 후 고향 가까이 직장을 옮겨서 더 이상 술자리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그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칼국수집 어머니도 보고 싶다.
잠깐 얘기가 딴 데로 샜지만 어쨌든 그와의 만남은 잠자고 있던 '나'를 깨워 주었고, 잊고 있던 '도'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동양고전 중 도덕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석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혹시 산책 갈 때 이 '도'를 화두삼아 산에 들고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덕경이라는 덱스트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결국 신비주의적 해석으로 끝을 맺는다. 안타깝지만 도덕경의 '도'는 결국 현대에 와서야 그 실체를 드러낸다. 노자는 자신의 '도'를 '무명'과 '유명'이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중 '무명'이 어렵다.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유명과 무명을 추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명이 뭔지는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인 有와 無를 '유'와 '무'로 읽을 것이냐 '유명'과 '무명'으로 읽을 것이냐에서 벌써 꼬여버린다. 이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특히 철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유명'과 '무명'은 상당히 후대에야 나오는 개념이라고 말한 것이 큰 오해를 불러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 노자 당시에도 이 개념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명과 무명으로 놓고 보면 이 책은 훨씬 일관성 있고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이것만큼 자명한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