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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우니 Apr 06. 2024

동아시아의 과학은

동아시아에서 과학이 탄생하지 않은 이유

三十輻共一穀(삼십복공일곡) : 서른 개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이는데 

當其無(당기무) :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有車之用(유차지용) : 수레의 쓸모가 있게 된다.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 :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當其無(당기무) : 가운데가 비어 있으므로 

有器之用(유기지용) : 그릇의 쓸모가 있게 된다. 

鑿戶牖以爲室(착호유이위실) :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當其無(당기무) :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有室之用(유실지용) : 방의 쓸모가 있게 된다.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 :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 : 없음이 있기 때문이다. (제11장)


 30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다. 그래서 수레의 바퀴가 존립한다. 바퀴통은 속이 비어 있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실은 수레로서의 유용성이 있는 것이다.

 점토를 이켜서 그릇을 만든다. 그릇은 속이 비어 있다. 그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실은 그릇으로서의 유용성이 있는 이유이다.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든다. 속은 텅 비어 있다. 그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실은 방으로서의 유용성이 있다. 이렇듯 모든 기물에 유용성이 있는 것은 공간, 즉 無가 그 유용성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有는 無의 작용에 의해서만 비로소 존립할 수 있다.

 노자는 여기서 수레, 그릇, 방의 세 가지 예를 들어서 지극히 깊은 철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낳는 근원의 진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다른데 있다. 저자가 갑자기 여기서 뜬금없이 이 세 가지를 예로 들면서 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추측컨데 노자는 만물을 낳는 근원적인 힘인 無爲의 작용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도를 깨달은 군주의 無爲之治가 있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어릴 적 집 대문간을 나가면 길가에 세워져 있는 녹슨 낡은 경운기를 보면서 늘 속으로 궁금했던 게 ‘이 경운기는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고향에는 지금은 다른 대도시로 이전하고 없지만 「대동공업」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경운기를 만든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를 지날 때도 그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알게 된 게 경운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경운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것들이 사실 다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적잖게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왜 우리가 만든 것이 하나도 없지?’로 궁금증이 바뀌었고 그리고 다시 ‘그럼 이런 물건들은 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로 이어졌다. 서양인이 현대문명과 같은 엄청난 성과를 내는 동안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등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그래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역사, 과학 서적을 뒤적거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 없었다. 그냥 우리에게는 과학이 없었다고만 할 뿐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저들을 하루라도 빨리 따라잡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 열을 올렸을 뿐 우리가 왜 과학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름 생각해 본 것이 서양을 제외한 그 외 지역 특히 근대 이전에는 유럽과 문명 수준이 엇비슷했거나 오히려 앞서 있던 동아시아, 인도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까지 그 어디에도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양 문명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는 중국이고 인도 역시 고대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었고 이슬람 지역도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라는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지역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 외는 그 어떤 지역도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먼저 그리스 문명과 그 외 문명과의 차이점부터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그리스 문명이 다른 문명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짐작갈 만한 부분이 있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선 최초의 민주주의를 시작한 곳이 바로 고대 그리스이다. 근대화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가 고대 아테네에서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민주정을 하기 전에 이미 그들은 상당히 개방적인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민주정을 하기 전의 그리스 역시 귀족이나 참주가 다스리기도 했지만, 이들의 전제정치는 시민들에 의해 오래가지 못하고 타도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고대 그리스의 왕이나 귀족은 힘이 없었다는 얘기다. 고대 중국의 전제정치가 얼마나 폭압적이고 가혹했는지를 비교해보면 그들의 전제정치는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오히려 문화가 발전하는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나는 동아시아가 왜 과학을 일으키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근대 이전의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유교도 근본적인 이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자의 세계관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또는 유교적 생활방식은 과학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공자의 가르침보다 더 큰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힘은 바로 동아시아의 기득권적 사회시스템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동아시아의 기득권은 굉장히 오래되고 그 뿌리가 깊다. 아마 동아시아에서 쌀농사를 짓기 시작한 7~8천 년 전에 권력이 탄생했을 거로 보인다. 쌀농사는 집단으로 취락(聚落)을 형성해서 집단으로 농사짓는 것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동원하고 통제할 권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권력은 점점 더 큰 권력으로 자라서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득권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시 수십, 수백 세대를 이어오면서 전 세계 어디에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고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 기득권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이들 기득권을 정당화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동아시아의 위정자들은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떠들어대면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지만 진정한 그들의 권력 기반은 민심이 아니고 일부 소수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과거 역사를 보면 기득권은 전 세계 어느 문명을 가도 인류가 농업 사회로 전환되는 대략 기원전 3~4천 년 전에 대개 비슷한 양상을 띠며 출현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왜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기득권이 지금까지도 그 위세가 꺾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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