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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Nov 29. 2024

마흔한 살이면 아직 아기지

글감이 되는 나이, 마흔에 대하여

 젊음은 자신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눈부시다. 그 시절 나는 내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젊음의 당당함과 무모함 때문에 이것을 오만이라고 한다면 나는 다른 종류의 오만을 떨었더랬다. 젊음을 인지하지 않은 죄, 그래서 젊음을 그대로 흘려버린 오만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더 멀리 가야 한다는 욕망, 그리고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조바심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마흔을 넘긴 지금은 다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가는 체감속도가 점점 더 빨라서 그만큼 내가 소중히 해야 할 순간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조바심이 난다. 시간이 갖는 무게를 이제야 실감하는 것은 마흔 하나의 양심과 겸손 덕분이다. 시간이 무기였던 젊음은 마흔이 돼서야 비로소 겸손해졌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배워야 할 것도 많아서 마음이 바쁘다. 젊음의 오만함을 마흔의 겸손으로 덮는 중인데 내 인생은 잘 익어가고 있는 걸까




 

 20대 때 생각했던 마흔한 살의 우아함과 여유는 나에게 없다. 나름 고찰을 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본성은 못 이기더라. 보여주기 싫은 나를 깊숙이 꽁꽁 숨겨도 어느 순간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움과 후회 사이를 오간다, 후회도 지겹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사랑하랜다. 하지만 나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사랑하기보다는 숨기고 싶어 진다. 겉으로는 단단하고 성숙한 모습이어야 할 것 같지만, 속에는 여전히 어리석고, 때로는 얄팍하며, 종종 나약한 내가 숨어 있다. 억지로 감추려 할수록 그 본성은 더 거세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 마치 꼭꼭 누른 용수철처럼, 순간적으로 더 강하게 튕겨 나온다. 아이들은 컸고 나는 늙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실수를 판단할 수 있다. 지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그제야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됐을 때 부모로서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중2 딸은 엄마의 모순적인 모습을 금방 눈치챈다. 나는 뜨끔하면서도 변명을 찾게 된다. 하지만 엄마의 실수나 약한 모습을 보면서도, 동시에 나를 응원하는 눈빛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들은 아마도 엄마를 완벽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지치고 불안해하는 모습, 가끔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모습,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다 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런 엄마가 약간은 우스워 보일 때도,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노력하고 있는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안에서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삶의 방식을 자연스레 느끼겠지, 오늘도 불완전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우리 엄마는요. 아침에 제일 늦게 일어나고 가끔 아침도 직접 차려먹어야 하지만 회사에서 늦을 때에는 때맞춰 반찬 주문해 주시고 외식도 자주 해주세요, 제 핸드폰 시간제한 걸어두고 엄마는 핸드폰삼매경일 때가 있는데요, 뭔가 억울하지만 봐줘요. 엄마니까요. 문제집 풀어놨는데 일주일째 채점을 하지 않아서 틀린 문제는 어떻게 풀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주말에는 서울에 이틀 동안 공연이 있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공연이요. 전 자유예요.




  

 

97세인 우리 외할머니. 쩔 수 없이 기억이 흐려지고 엉뚱한 말씀을 하시곤 해도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면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끄집어내신다. 얼마 전 할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장난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나 몇 살 같아?”
 “음... 13살은 되었나?!”

 그 대답에 웃음이 터지면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할머니는 지금 몇 살이야?”
잠시 생각하시더니,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나는 서른 넘었지.”

 "할머니, 있잖아 나 마흔살넘었다?"

 "무슨 소리여! 마흔살이 아기네 아기"


 할머니는 정말로 나이를 초월해 계신다. 97이라는 숫자는 할머니의 삶을 설명하기엔 너무 작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이야기를 간직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어쩌면 할머니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마흔한 살이면서 열세 살인 손녀와 서른 넘은 할머니가 함께 웃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그래 마흔 한 살이면 아직 아기지!






 '젊음이란 가장 강력한 무기이면서도, 그것이 무기임을 모르는 게 진짜 힘이었고, 마흔의 겸손함은, 그 무기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이해하고도 그것을 잃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어른답지 않아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이는 그 나름의 오만함과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마흔의 오만함은 들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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