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만 몸의 병과 달리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나는 내가 마음을 다쳤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매일 같이 머리가 아팠고, 작은 일에 눈물을 흘렸으며, 종종, 아니, 매일 같이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황이 찾아왔다. 병원을 찾아가니 우울을 동반한 마음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의 병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게는 마음의 병이 찾아올 만큼 큰 일이 없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며, 남편은 가정에 충실했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평안하셨고, 일터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손목을 많이 쓰면 손목이 아프고,
허리를 많이 사용하면 허리가 아프듯,
마음을 많이 쓰면 마음이 아프다.
그 글귀를 읽고서야 나는 이해했다.
그래, 나는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이지. 상대방에게 늘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쏟았으니, 마음이 아플 수도 있겠구나. 오랫동안 너무 마음을 졸이고, 마음을 쓰며 살아와서, 견디다 못한 마음이 고장 났구나.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원인을 인지한 나는 그에 따른 해결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최근 들어서는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골똘히 골몰했다.
그러던 중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생각을 다루는 것과 감정을 다루는 일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의 예를 들자면,
부정적인 생각은 타인으로부터 '부인'되어야 우선 해결된다.
누군가 "나는 너무 못 생겼어."라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것이 본인만의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이 "그래, 넌 좀 못 생겼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나는 역시 못 생겼구나.'라며 잘못된 생각을 강화할 것이다.
이땐 옆에 있는 누군가가 "아냐. 그건 네 잘못된 생각이야."라고 짚어주어야 그 사람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되짚게 된다. '내가 정말로 못 생긴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 고민이야말로 잘못된 생각(신념)을 바꾸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감정은 타인으로부터 '공감'되어야 우선적으로 해결된다.
누군가 "나는 너무 슬퍼."라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이 "아냐. 넌 슬픈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슬픔에 취해 있는 사람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 아닌 게 맞나?'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은 상대에 대한 반발과 이해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먼저 올라온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했다.
'나는 너무 슬퍼.'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래도 너에겐 00가 있잖아.', '넌 00하니까 그 정도는 감사할 줄 알아야지.', '~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야. 그럼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해결 방법을 찾기에 앞서 내 감정부터 돌봤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남들의 마음은 그렇게 열심히 읽었으면서 정작 내 마음은 한 줄도 읽어주질 못했다.
아, 이번 일로 네가 슬펐구나.
그래, 그건 힘들만 했어. 다른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 지치고 힘들었을 거야. 그 동안 버티느라 고생 많았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었어? 면전에 대고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정말 짜증나는 일이네!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도 마음을 읽어주는 일이 필요했다.
지금은 부족하게나마 내 마음을 인정해주고 있다.
스스로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전에 먼저, 아직도 자라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다독인다.
쉽지 않은 일인만큼 조금씩,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