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린스] 길이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되지.
“엄마, 난 운이 없어요. 제대로 연결된 길이 하나도 없어요. 이번 판은 망했어!!”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지. 지난번에도 그랬던 거 기억나지?”
대체 뭘 그렇게 맨날 처음부터 망하는지. 투덜이 스머프가 따로 없다.
<라비린스>를 할 때마다 몇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프리랜서였던 나는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정오쯤 7살, 4살 아이들을 봐주시던 이모님께 갑자기 못 오시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늘이시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당장 맡길 데도 없고, 달리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오래 고민할 틈도 없었다.
“오늘 미팅을 다른 날로 미뤄도 될까요? 갑자기 죄송합니다.”
뭐 이런 식의 무례한 당일 취소 통보라니.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에 목소리는 자꾸만 작아졌다.
“아이들 데리고 오세요. 일하시는 동안 사무실에서 돌봐 드릴게요!!”
좀 당황스럽다느니, 가장 빠른 다음 미팅 가능 일정은 언제냐느니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던 내가 무안해지는 순간. 평소 아이들을 예뻐하고, 소탈한 성품을 가진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반응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잠시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애들을 봐주시겠다는 제안을 듣고도 미팅을 취소하는 게 더 무례한 거라며 중얼거리는 수밖에.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해서 가는 길. 아이들은 엄마 일터에 처음으로 따라간다는 흥분에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와 달리 자꾸만 마음이 복잡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생계형 맞벌이의 서러움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런 데다가 막상 도착하니 두 아이 모두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다는 게 아닌가. 낯선 환경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어떻게든 약속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이제껏 잘 참아왔던 눈물이 핑 돌았다. 자존심이니 허세니 하는 것들은 다 내려놓고 남의 도움을 기꺼이 받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었다.
여차저차해서 겨우 미팅을 마쳤다. 회의실 밖에서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덕분에 뾰족해졌던 마음이 둥글둥글해졌다. 일을 끝내고는 직원분께 다시 인사를 드렸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오늘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덕분에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고 말이다. 그분께서는 “일하는 엄마는 다들 이렇게 키워요.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일 못해요.”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중년의 여성분이셨기에 더 잘 이해해 주신 걸까.
그날 저녁 아이들은 거기에서 <라비린스>라는 보드게임을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며 당장 우리도 이걸 사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암요, 암요, 원하시면 사드려야죠. 그런데 너희, 아까 사무실 앞에서 뻗대서 엄마 울리지 않았니? 그렇게 시작된 <라비린스>의 나날. 아이들은 매일 같이 서로 이겨보겠다고 옥신각신했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라비린스>를 들고 오곤 했다.
<라비린스>는 움직이는 미로 속에서 보물을 찾아 시작점으로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우선 참가자는 주어진 보물 카드 여러 장 중에서 어느 보물부터 획득할지 결정한다. 그러고는 자기 말을 이동하여 보물을 순서대로 찾아 나서게 된다. 미로의 특성상 길이 벽에 막혀 있기도 하고, 심지어 길이 모두 끊어진 땅에 말이 갇힐 수도 있다. 아이들의 원성과 불만으로 대환장 파티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다행히 여분의 길 타일 하나가 남겨져 있다. 미로 주위의 화살표를 하나 골라 그 방향으로 길 타일을 밀어 넣으면 완전히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격려하고, 일시 정지된 게임을 재개하려는데…
“야, 너 때문에 내 길이 끊겼잖아!”
“그럼 어떡해? 이걸 움직여야 나도 드래곤 얻으러 갈 수 있단 말이야.”
작은아이가 길 타일을 밀어 넣는 바람에 큰아이가 미리 봐둔 길이 엉망으로 어그러진 것이다. 이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자기 보물 얻으러 가려다가 그랬다는데 뭐라고 따지기도 우습다. 나도 언젠가는 그랬을 테니까 샘샘이다. 설령 일부러 나를 방해하려는 속셈이었대도 마찬가지다. 승부의 세계는 원래 냉정한 법이 아니던가. 화가 난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나만 손해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다시금 길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다.
이럭저럭 끝이 보일 때쯤이면 어김없이 한 아이가 울먹거린다.
“엄마, 길이 진짜 다 막혔어. 나 아직 보물 하나밖에 못 찾았는데.”
“으하하. 난 거의 다 찾았지. 내가 이길 거 같은데? 히히.”
다른 아이가 약 올리기까지 시작하면… 뒷일은 상상에 맡긴다. 내가 더 울고 싶다. 이것은 정녕 누구를 위한 놀이인가. 다 그만두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침을 한번 꼴딱 삼킨다. 얼굴이 파르르 떨릴망정 입꼬리를 한껏 끌어당기며, 입이 댓 발 나온 아이를 토닥토닥 달래준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봐!” 조금 떨어져서 판을 바라봐야 미로 전체가 한눈에 더 잘 보인다는 비법을 전해주는 것이다. 지고 있는 아이를 은근슬쩍 도와주면 가끔은 그 아이가 역전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다 이긴 게임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아이에게는 패배의 아픔이 더 쓰라리겠지만. 그러게, 누가 잘난 척하랬니? 얘들아, 이것 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보물을 꼭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보드게임은 운칠기삼(운이 7할에 기술이 3할.)이라나 뭐라나. 게다가 상대가 암만 얄밉게 굴어도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건 속 터지는 일이다. ‘이까짓 보드게임’에 승부욕을 불태우게 될 줄이야.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다. 일단 재밌으니까. 오늘 저녁에도 <라비린스> 한 판 해야겠다. 설마 애들한테 또 지지는 않겠지.
*제목 배경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