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바뀐 앞자리
알바를 하고 교내장학금을 받아 4년제 대학을 내 스스로 졸업하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26개월 군복무도 스무스하게 마쳤으며,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남들에게 나쁘지 않은 타이틀(월급은 아주 많이 나쁘다)의 공무원으로 임용도 됐다. 이처럼 나의 20대는 정말 치열했고 항상 바쁘게 살았다.
'야, 20대가 가장 행복한 거야!'
졸업한 학교 선배들의 확신에 찬 단호함이 그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은 30대라는 이야기의 일종의 복선이었다. 20대가 가장 행복하다면 30대는 덜 행복하는 뜻일 테니 말이다. 2에서 3으로 숫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현실을 마주하는 감정은 180도 달라져버렸다.
k-장녀 콤플렉스라고 들어봤을 거다. 유교사상에서 파생된 첫째가 스스로 짊어지는 부담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리지널 코리안가이인 나 역시도 이 콤플렉스 말기환자다. 20대 때는 알바해서 번 돈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옷들을 사고 먹고 싶던 음식들을 사 먹으며 철저히 내 행복을 위해서 살았다. 왜? 난 남들과 다르게 고등학교 졸업 후 용돈 한번 받은 적 없고 등록금도 알아서 마련했으며 틈틈이 모아서 해외도 다녔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지독한 콤플렉스는 긴 잠복기를 지나 서른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맛있는 걸 먹어도 아직까지도 일하시는 부모님과 공시생인 동생에게 포장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여행지가 마음에 들면 다음에는 가족들과 같이 와서 꼭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가족의 경조사를 내가 나서서 챙기고 이제까진 어려서 나에게 터놓지 못한 엄마의 고민도 들어주고 싶었다.
동시에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건 서로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 코 골며 같이 잘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매달 전해지는 직장 동료들의 청첩장은 축하할 일인 것과 동시에 나의 씁쓸한 통장잔고를 걱정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행복하게 살았다며 끝나는 왕자와 공주의 러브스토리에서 앞으로 설거지와 빨래로 티격태격하진 않을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사물과 현상의 다른 면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나과제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곤란한 상황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서른이 되어서야 떠올랐다
대학생 때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알바를 했었다. 그 당시 아이들의 성적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내가 모질게 대하고 무섭다는 말을 들어도 칭찬 한마디 없이 현실 팩폭을 날렸었다(영화 위플래시의 플레처교수가 떠오른다? 바로 그것이다)
'고2 - 숙제 내주신 문제 60개 중에 40개나 풀었어요'
'나 - 20문제는 안 풀어온 거네, 숙제 안 하니?'
'고2 - .....'
어쨌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이어지는 연말이 되면 아이들에게 바로 내년을 준비하라는 말을 했었다. 연도와 학년이 바뀌는 건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으니 우린 그보다도 먼저 앞서서 준비해야 한다고 그래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다그쳤었다.
'나 - 며칠 뒤면 곧 서른이지만 아직은 아니야~'
'고2 - 쌤, 이제 서른인데 준비 다했어요?'
'나 - .....'
그 시절 꼰대 같던 선배의 말도,
학생들을 다그치던 2N살의 내 모습도
지금의 나를 일깨우진 못했다.
인생의 세 번째 막이 올랐고
난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관객들 앞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