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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01. 2023

당근페이 되나요?

우리 애 문해력과 당근의 상관관계

당근이요. 밤늦은 시각, 낯선 아파트의 주차 차단기가 올라간다.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몇 동, 몇 호인지를 중얼거린다. 남의 집이지만 공동현관 비밀번호쯤은 이미 알고 있어서 이 번호를 과연 비밀번호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매번 한다. 오늘의 당근은 쑥쑥 커가는 큰아들의 츄리닝. '그 집 아들'은 줄무늬가 주황색이라서 안 입는다는데 '이 집 아들'은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츄리닝이면 된다. 어차피 몇 번 입고 나면 얼마못가 무릎에 구멍이 난다. 도대체 학교 복도에서 무슨 세리머니를 그렇게 하는 건지 눈에 선하지만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삼선 츄리닝이 곱게 접혀 종이봉투에 담겨있다. 경쾌하게 집어 들고 쳇을 보낸다.

잘 가져갑니다!


당근에서 삼천 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나. 육아용품을 하나 사려면 몇 날 며칠을 후기를 찾아보고 이 물건이 얼마나 유용하게 애보기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민 끝에 적게는 몇만 원, 많게는 몇십만 원을 결제하고 '이건 꼭 필요한 거야'를 스스로에게 합리화하지만 사실 잘 써도 몇 달이다. 가끔 당근에 보면 내가 내놓은 물건의 원가가 얼마이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한껏 뽐내는 글을 본다. 실상은 사용감이 아주 많은 상태...... 그런 글을 보면 과연 팔려고 내놓은 것인지 자랑을 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사용감이 많은 원래 비쌌던 물건보다는 조금 저렴하지만 디자인 예쁜 새 물건들이 온라인마켓에 이미 많은데. 아무리 비싼 물건도 찾는 사람이 없다면 드림으로 올려도 가져가지 않는다. 당근에서 삼천 원은 큰돈이다.  '미드 센츄리 모던 인테리어'를 해보자고 샀지만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아 거의 새것인 의자를 살 수 도, '우리 애 문해력'이 이 전집 하나면 쑥쑥 올라갈 것 같아 야심 차게 샀지만 아이가 보지 않아서 쩍쩍 소리가 나는 전집도 살 수 있다.  

당근에서 제일 많이 사는 것은 책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거실에 티브이를 치우고 책장을 놨는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비틀비틀 거실로 나가 눈곱을 비비며 책을 꺼내보는 아들의 뒤통수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거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고 이걸 다 읽긴 하는 건가 싶은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아들은 어김없이 "엄마, 다 읽었던 거야. 책 좀 바꿔줘."라고 기특한 요구를 한다. 당근에 올라오는 아이들 전집은 새책으로는 내 형편에 살 수 없는 양질의 전집들도 많다. 사고 싶지만 비싸서 망설이던 전집을 당근에서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에 구하는 날이면 "득템득템"을 외치며 하루가 뿌듯하다. 그리고 며칠 전 나도, 엄마가 보기에 참 좋아 보여 산 쩍쩍 소리 나는 전집을 눈물을 머금고 드림으로 치웠다. 저렴한 가격에도 팔리지 않는 걸 보니 역시나 '그 집 아들'이던 '이 집 아들'이던 그냥 흥미가 없는 책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도 당근 출석! 작년 여름에 역시즌 세일로 사뒀던 큰애 패딩이 있다. 세일폭이 커서 사고 나서 나름 뿌듯했는데 웬걸, 겨울이 되어 입어보니 작다. 아쉽지만 쑥쑥 커버린 아이 탓을 할 수는 없으니 상품텍도 떼지 않고 당근용 사진을 찍는다. 얼마에 올려야 잘 팔릴지 혼자서 하는 눈치게임을 거치고 나서 당근에 올린다. 당근, 당근, 당근. 올리자마자 여러 명이 구입하겠다며 알림을 보낸다. 아...... 삼천 원만 더 올려서 팔걸 그랬나. 눈치게임 실패. 그래도 어느 집 아들내미는 올 겨울 따뜻하게 보내겠지 싶어 홀가분하게 쳇을 보낸다.


네~ 언제 오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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