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맹맹해지고 손끝이 시려지는 12월. 진한 생강차 한 잔이면 목구멍이 홧홧해지고 가슴이 뜨끈해진다. 감기 따위 생강의 매운맛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훅 불어온 찬바람에 맞서는 홈메이드 진심 생강차 만들기.
추워진 날씨에 야채가게 앞을 종종거리며 지나가는데 유독 때깔 좋은 생강 한 바구니가 눈에 띈다. 햇 생강이다. 이즈음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들으며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바람에 날리는 노오란 은행잎'에 눈물이 금방 고이고마는 감성인간의 기간이라 바구니에 담긴 싱싱한 생강이 참이나 기특했다. 학원 안에서 원어민과 대치하며 단어시험을 치고 있는 아들보다 눈앞의 생강이 더 기특하다니.
바야흐로 김장철. 아직 양가에서 김치를 조달받고 있는 입장에서 생강 따위 무용지물일 텐데 일 년 동안 소나기를 버티고 튼튼하게 자라 흙속에 묻혀있다가 김장철이라고 땅에서 잡혀 나와 콧물을 훌쩍거리는 감성인간 아줌마 앞에 나타난 생강.
"여기 이 기특한...... 아니, 생강 한 바구니 주세요."
1. 생강은 껍질을 벗겨 배와 함께 믹서기에 갈아준다. 생강 한 봉지를 사 와 레시피를 검색해 보니 배랑 같이 갈면 부드러운 맛을 낸다고 한다. 마침 친정에서 보내온 배가 아직 냉장고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생강과 함께 쓱쓱 깎아 넣으며 이렇게 안 먹고 버려질 것 같았던 배도 처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믹서기에 생강을 간다. 갈고 난 생강은 면포에 꽉 짜서 걸러준다.
2. 배생강원액은 하룻밤정도 냉장고에서 생강전분을 가라앉혀 윗물만 쓴다. 생강에도 전분이 있다는 것은 몇 년 전 감당 못할 어마어마한 양의 생강을 사서 만들었던 생강청의 쓴 경험에서 알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가라앉히면 된다는데 경험상 하룻밤정도는 냉장고에 두어야 제대로 가라앉는다. 그때 어마어마한 양의 간 생강을 냉장고에 넣느라 부엌이 전쟁터가 되고 남편과도 전쟁이 날 뻔했다. 가라앉은 생강전분은 말려서 요리에 쓴다고도 하는데 그럴 정성까지는 없다. 목표는 오로지 생강차.
3. 배생강 원액에 알룰로스와 설탕을 잘 녹여 은근한 불에 달인다.청은 기본적으로 재료를 설탕에 절인다. 매실청도, 레몬청도 오미자청도 원재료 동량의 설탕이 들어간다. 레시피대로 넣다 보면 설탕을 이렇게까지 때려 부어야 되는가 스스로 놀라게 된다. 설탕이 녹아서 발효가 되니 괜찮다지만 혈당기로 측정을 해 보니 수치를 눈으로 보고는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한 달지 않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설탕이 들어가야 하면 최소한으로. 그것도 거의 대체당인 알룰로스를 쓴다. 설탕가격의 몇배. 나도 모르게 아껴서 넣으며 '이거 원가가 대체 얼마야 사 먹는 게 더 싼데 왜 만들고 있지' 중얼댄다.그럼에도 만들면서 누구 줄 사람 없나 계속 생각한다. 신세 진 사람들. 마음 쓰이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
중 약불에 은근히 다려야 한다.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센 불로 끓였다가는 끈적한 생강청이 넘쳐서 대참사가 일어난다. 정성을 들이는 일이 모든 그렇다. 살살 달래며 꾸준히, 은근히. 그래서 어려운 일이지. 진심과 정성.
4. 잘 졸여졌으면 마지막에 꿀을 첨가하고 소독한 병에 담아준다. 알싸하지만 달달한 맛에 먹게 되는 생강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모순처럼 달달하지만 달지 않은 생강차를 만들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콘셉트가 확실해야 먹히는 시대에 애매한 것은 콘셉트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