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 이번 달까지만 다니고 좀 쉴게요.”
짧은 문자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문자 속의 그 아이는 내 나름 잘 다니고 있다 생각했던 아이였기에 더욱 갑작스러웠다. 이런 식의 통보는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들을 때마다 놀란다. 바쁠 때 잘못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가는 흩어진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 찾아낸 방법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간단한 답장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따 연락드릴게요~^^”
웃지 않으면서 웃었다. 문자 소통의 가장 큰 미덕은 웃지 않으면서 웃을 수 있고, 울지 않으면서 울 수 있다는 점 아닐까. 하던 수업을 이어갔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수업을 했다기보다 꾸역꾸역 끌고 갔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아이 엄마의 결정은 무엇 때문일까.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다 결국 휴대폰을 들었지만, 쉽사리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차피 좋은 연락도 아닌데 그냥 내일 할까? 약해지는 마음이 소곤거린다.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메시지로 대신하기로 했다. 메신저 창을 여는데, 아파트 학부모 단톡방 15라는 숫자가 먼저 눈에 띄었다. 용기는 없어도 궁금한 건 못 참지. 고민하는 순간 손가락은 이미 단톡방을 먼저 열고 있었다.
‘이런 씁쓸한. 오늘 잠은 다 잤구나.'
그 아이 엄마가 학원 질문을 올렸다. 지금 다니는 곳이 마음에 안 들어서 옮기려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쿡 박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밤은 뜬눈 사이로 사라지고, 학부모 참관 수업 날이 밝았다. 쌍둥이인 둘째와 셋째는 서로 같은 반을 하기 싫어한다. 그 덕에 양쪽 반에 자녀를 둔 엄마인 난, 복도 가운데에서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아야 한다. 이 사실이 제법 속상하고 피곤하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다행이었다. 양쪽 반을 다 보아야 하는 바쁜 엄마이고, 불편해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닌 바빠서 그런 거라는 이유가 되어 준다. 담임 선생님이나 내 아이들보다, ‘그분과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짓고, 뭐라고 해야 하나?’ 모든 신경이 그리로 모였다. 두근두근. 귀에서 뛰는 것만 같은 심장 소리를 들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교실로 가서 한 바퀴 쓱 훑어보는데 없다. 대신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라도 만난 양 반가운 거겠지. 반가운 마음 듬뿍 담아 나도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쯤인가 지났을 때, 복도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내 팔을 누가 잡는다.
“어머님~! 지금 오신 거예요?! 하하하~”
자동 작동 시스템이 무척 고맙다. 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없는데,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마쳤다. 어쩐지 차를 한 잔 함께 나누어야 할 것 같았고, 내내 고민하다 용기 내어 물었다. 조심스런 물음에 너무도 흔쾌히 “어머, 그럴까요?”라며 반기는 이 어머님. 어제의 내용들은 내 이야기가 아니었나, 마음이 복잡하다.
카페로 걸어가며 아이들의 문제를 앞다투어 토로하느라 정신없는 우리. 은행잎들이 노랗게 살랑이는 가을 햇살 아래, 인상 좋은 아줌마 둘이 마주 앉았다. 요즘 얼마나 아이들의 문제로 마음이 어지럽고 힘든지를 눈까지 반짝이며 이야기 나눴다. 그녀는 아이의 틱이 심해져서 속상하고, 놀이치료를 시작했으며, 집을 나가라고 화내는 엄마 앞에서 보란 듯이 여름옷과 겨울옷, 샌들과 부츠까지 챙겨서 집을 나갔던 아이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센터에서 전해주는 부모 교육은 죄다 숨 막히게 할 뿐이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고 그만 말하라며 치료사에게 화를 내었다고도 했다. 어머님부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셔야겠다는 말이 그렇게 서럽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가 지금은 힘들어하니 모든 것을 쉬고 엄마와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숨 쉴 틈을 주고 싶다는 거다. 아이가 공부방에서는 밝은 편이었고 틱도 그렇게 자주 보이진 않는다 생각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듯했다.
단톡방에서 학원을 알아본 것은 아이의 형 이야기인데, 그래도 공부를 아예 놓으면 안 될 것 같아 동생도 같이 영어학원을 보내 볼까 싶기는 했단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지만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그저 나의 이야기들을 했다. 나도 어렸을 때 틱이 생겼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함께 살아가고 있긴 하다고. 하지만 긴장이 높아질 때만 나타난다는 것과 때로 신경이 쓰이지만 살아가는 것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큰아들을 데리고 병원과 센터를 다니며 내 욕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날 선 말들을 했던 시간들을 들려주었다. 모든 것이 다른 아이들의 두 배는 시간이 필요한 내 첫사랑 큰아들. 아이보다 한참을 앞서 자란 욕심이 아이에게 모진 말과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는 화살이 되었다고. 태어나기를 워낙 긴장도 높은 아이로 태어났고 자라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저학년 때는 수업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너무 길게 울기도 했고, 참고 참다 대변 실수를 하기도 해서 수시로 학교에 불려 갔었던 추억은 덤이었다. 아이를 데려오거나 학교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뒤처리를 하며 남몰래 어루만져야 했던 복잡한 마음은 사실 시간이 명약이었다.
직업 때문에 동네생활이 더욱 조심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선생님 아이들은 엄청 잘할 것 같아요! 몇 학년 몇 반이에요?" 그 물음 하나에서 역사는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잘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서 누가 알아볼까 늘 살피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 했던 내 모습이 그제야 눈앞에 펼쳐졌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딸아이 방에 있던 자신을 향해 애끓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두드리던 쿠퍼의 모습. 거기에 내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뭉클함이 올라와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묘한 것 같다. 그렇게 지키려 애썼던 커다란 색안경을 벗어 내려두고 보니, 아침까지도 마음 졸이고 힘들었던 것들이 제법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털어놓고 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마주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살았을까 부끄러웠다. 이기적인 엄마와 함께 살아오느라 필요 이상의 고생을 더 했고,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애틋하고 미안했다. 그녀도 나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선생님은 참 친구 같아요. 오늘 너무 감사해요.
종종 차 마셔요 우리.”
지지리도 못난 나를 드러낸 오늘,
학생 한 명을 잃었지만 친구 한 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