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바다 오르간 - 태양의 인사
운전하는 내내 긴장되고 무서웠다. 해가 진 저녁에 나 홀로 가파른 산길을 타니—거의 5분에 한 번 꼴로 다른 차를 볼 수 있었다—지금만큼은 절대 사고 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바짝 집중했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괜히 돈 아낀다고 고속도로를 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2시간 넘게 운전을 한 끝에 무사히 자다르에 도착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친절히 맞아주셨다. 4인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나 혼자 이 방을 쓰게 되어 매우 기뻤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했지만, 자다르에 있을 시간이 얼마 없어 대충 짐만 풀고 바로 나왔다.
일단 허기진 배를 달래주러 블로그에서 미리 찾아둔 Crazy Pizza라는 식당으로 갔다. 일반 피자의 1/4 크기 조각을 겨우 3유로에 파는 기적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토핑도 아끼지 않고 뿌려져 있었다. 한 조각을 사들고 자다르의 해변가를 쭉 걸었다. 한적하고 바람은 솔솔 불어와 하루종일 긴장해서 쌓여온 피로가 저절로 풀렸다. 구시가지 끝쪽까지 가니 우웅우웅하면서 다소 엉성한 음악이 들려왔다. 바다 오르간이라 불리는 곳인데, 파도가 바다 아래 있는 파이프를 스치며 내는 소리라고 한다. 이곳의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가만히 앉아 피자를 베어 먹으며 멍하니 밤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매일 밤 이런 낭만을 누릴 수 있는 자다르 주민들이 참 부러웠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크로아티아 맥주 한 병을 사 와 방에서 마셨다. 오쥬스코(Ozujsko)라는 맥주였는데, 보리맛이 지배적인 라거였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꿀떡꿀떡 잘 마셨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오쥬스코는 라들러가 정말 맛있다고 한다. 라들러는 근본이 없다고 취급하지 않던 나 자신을 후회했다.
Queen Jelena Madijevka Park - 자다르 성벽 - 로만 포룸
전날 5시간 운전으로 인해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해 버린 나는 10시간 정도 잔 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이날도 스플리트까지 2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푹 잔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구시가지까지 작은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성수기였다면 오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이지만, 11월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바닷물의 색깔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구시가지에서 볼 바다가 더욱 기대되었다. 구시가지의 입구인 다섯 우물 광장에 갔다. 이유 모를 우물들이 있었는데 이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바로 옆 공원을 쓱 둘러보았다. 나름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으나, 성벽과 나무들에 의해 구시가지 내부는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다홍빛 지붕만 눈에 들어왔다.
이후 자다르 성벽 위로 올라가 보았다. 자다르의 이 방어 체계가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는데, 작은 시가지를 두툼한 성벽으로 둘러싼 것 외의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바로 시내로 들어갔다. 꽤 큰 성당들도 있었고—입장료가 있어 들어가 보진 않았다—, 고대 로마 시대 지어졌던 석재 기둥들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2열로 나란히 나열된 기둥 파편들을 따라 걸어, 결국 다시 어젯밤에 산책을 했던 바닷가로 나왔다. 이미 알고는 있었음에도 나를 매료시킬 만큼 바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청록색이 매우 선명했다. 겨우내 다녀왔던 튀르키예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해양들 중에서는 지중해가 가장 볼 맛이 난다. 주변 가게에서 젤라또를 하나 사 먹으며 더 거닐며 따뜻한 햇살과 함께 푸르른 지중해를 내 눈에 담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 되어가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마땅한 식당이 안 보여서 전날 갔던 Crazy Pizza에서 또 3유로짜리 피자 한 조각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참 이렇게 가성비 좋은 식당이 유럽에 또 있을까 싶다. 이리하여 평화로웠던 짧은 자다르 방문이 끝났다. 딱 하루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 적절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