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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Jul 24. 2024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첫째 날

스르지산 전망대

 금전적 문제 외에 고속도로를 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 해안도로였다. 하지만 비가 오다 안 오다 하는 흐린 날씨 때문에 내가 바랬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도로를 달리다 비도 그쳤고 잠시 잠도 깰 겸 길가에 잠시 차를 댔다. 오히려 비와 짙은 구름이 만들어내는 스산한 분위기가 절벽들과 의외로 잘 어울렸다. 잠은 금방 깼지만, 먼바다를 한참 더 바라보다 운전대를 잡았다.

 보스니아를 우회해서 가려면—통과 시 여권 검사를 해야 한다—펠레샤츠 대교를 건너야 한다. 2022년에 완공된 2km가 넘는 다리로, 그 새하얀 모습이 멀리서 보면 정말 예쁘다. 하지만 이 근처에 왔을 때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빗줄기가 매우 거세졌다. 그러다 다리를 다 건너고 나서야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순식간에 개어 버렸다. 운전에만 집중하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조금 섭섭했다. 이후로도 날씨는 하루 내내 말썽을 피우며 나를 괴롭혔다.

한쪽이 절벽이라 낮게 깔린 구름이 꽤나 잘 어울린다 | 프라뇨 투지만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보이는 두브로브니크의 전경

 14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이날도 그렇고 여태까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항상 주차할 자리가 남아있었던 것은 지금 봐도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성수기였다면 주차는커녕 시내에 차를 끌고 들어오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6인 도미토리룸에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잠시 쉬면서 방을 둘러보는데, 내 맞은편 자리 선반에 신라면 컵라면이 보였다. 오랜만에 한국인이랑 같은 숙소를 쓴다는 생각에 살짝 설렜다. 여태 계속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심심했는데, 저녁에 한국말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보았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가랑비만 애매하게 와서 우산은 들고 가지 않고 Jack Wolfskin 바람막이만 입고 갔다—겨우 2달 독일에 살았다고 독일인 흉내를 좀 내보았다. 스르지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산 아래에서 구불구불한 길을—구글맵으로 세어보니 지그재그 모양이 무려 8번 반복된다—1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인해, 안에는 땀 밖에는 빗물로 덮여 매우 찝찝했다. 하지만 튼튼한 독일제 바람막이 덕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방향을 꺾는 곳마다 예수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상징하는 동판들이 있었다 | 오르는 중간에 찍은 두브로브니크

 일몰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 전망대에 도착했다. 큰 십자가가 있고 계단과 난간을 잘 만들어놓은 그럴싸한 전망대도 있지만,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제대로 닦인 길이 없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널브러진 경사진 돌바닥이 명당이었다. 이 황량한 전망대에서 30분 정도 그나마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구시가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산꼭대기라 바람도 거세게 불고 바닥은 딱딱하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활한 바다에 맞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성벽이 산꼭대기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있는 지금 내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막바지에는 해가 완전히 져버려,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발목이 돌아가지 않게끔 한걸음 한걸음 긴장하게 발을 디뎠다. 무사히 하산한 뒤 시내로 내려와서는 환하게 불이 켜진 성벽을 잠깐 둘러보다 햄버거와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와 정작 그렇지 못한 전망대 | 산꼭대기에 있는 방송탑의 조명색이 수시로 바뀐다

 PAN이라는 싱거운 라거와 함께 기름진 햄버거를 먹고 침대에 누워서 푹 쉬고 있었다. 방에 다른 손님이 들어와 있길래 인사를 하고 잠깐 스몰톡을 나누었다. 20대 영국인 여자였는데, 스플리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다르게 말수가 별로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피곤할 때 나누는 영어 대화는 딱 질색이다. 침대에 누워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아까 봤던 컵라면의 주인을 기다렸다. 얼마 뒤 그녀가 왔는데, 아쉽게도 한국인은 아니고 중국인 같았다. 살짝 실망했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다시 내 할 일을 했다. 심심하긴 했지만, 영어로 더 대화할 체력은 남지 않아서 얼마 안 가 바로 잠을 잤다.


둘째 날

코토르(몬테네그로)

  이날 일정은 당일 아침에 정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예보에 흐리다고 나와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니 회색 구름은 둥그런 해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날이 좋은 날에 이동을 하는 게 편할 거 같아서 이날 코토르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유동적으로 일정을 바꿀 수 있어, 차를 빌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짧은 당일치기였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 코토르 편은 따로 썼다.

 출발하기 전 계획과는 다르게, 해가 지기도 전에 숙소에 돌아왔다. 체력도 남아돌고 더 이상 계획도 없어 정처 없이 구시가지로 향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성벽 주위로 조명이 켜져 있었다. 필레 관문을 통과한 이후부터는 구글맵을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구시가지를 활보했다. 막 걷다 보니 내 어깨너비의 두 배도 안 될 정도로 좁은 골목에도 들어가게 되었는데, 혹시 누가 나를 뒤따라올까 살짝 겁도 났다—뒤를 절대 돌아보지 않은 것은 덤. 그러다 왕좌의 게임을 촬영했던 Jesuit Stairs에 도착했다. 계단이 특별히 예쁘진 않았는데, 주위에서 시끌벅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쉰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가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신랑 신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날 결혼식을 올린 것 같았다. 도시 사람들 전체가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가끔은 질서를 내려놓고 서로를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행복해졌다. 이들을 따라서 성벽 밖으로 다시 나왔다. 여전히 이들은 시끌벅적 노래를 부르고 수다를 떨었다. 저녁 먹을 것을 사러 가는 길에 이들이 탄 차들이 막 지나갔다. 그냥 지나간 게 아니라 막 경적을 울리며, 이 기쁜 소식을 온 동네에 알렸다. 낭만 치사량을 초과해 버렸다.

 마트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컵라면의 주인이 부엌에 들어와서는 인사하며 내 옆에 앉았다. 처음에는 또 영어로 오래 대화해야 한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대화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은 Lummy로, 대만에서 온 체코 교환학생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나 진로 등 공통된 관심사도 많고, 서로 각자의 모국어를 학창 시절 몇 년간 배웠어서 대화 주제가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영어 발음도 딱 내가 알아듣기 쉬울 정도로 좋아—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의 발음은 오히려 알아듣기 힘들다—알아듣는 데에도 압박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매우 잘 웃어주었다—한국인이었다면 정말이지 설렐 뻔했다. 누나가 내일 두브로브니크를 떠난다고 해서 아쉬웠지만, 다음 주말에 교환학생 행사(Spreebreak)로 둘 다 베를린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Whatsapp 연락처를 주고받고 정리했다.

 후의 일이지만, 2월에 그녀는 갑자기 내 한국 주소를 물어보더니 체코에서 엽서를 써서 내게 보내주었다. 마침 나도 딱 귀국한 직후라 바로 받아 읽을 수 있었다. 겨우 두 번 얼굴을 본 사이인데 타국에서 손편지까지 보내주어 감동받았다. 안 그래도 귀국 후 바로 5일 뒤 매우 중요한 시험이 있어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이 편지 덕분에 힘이 났다. 여덟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2~3일에 한 번씩 Whatsapp을 주고받는다. 대만에 가게 되면 꼭 그녀를 찾아가야겠다.

같이 찍은 셀카가 없어 밤의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대체한다 | 마지막 한국어로 직접 쓴 부분이 살짝 내 마음을 울렸다


셋째 날

필레 관문 - 성모 마리아 승천 대성당 - 렉터 궁전 - 로브리예낙 - Bellevue Beach

 두브로브니크 성벽 입장 시간 9시에 맞춰 필레 관문을 통과했다. 24시간짜리 두브로브니크 패스로 하루 종일 다녔다. 웬만한 곳은 다 입장할 수 있고 대중교통도 이용 가능해서, 뇌 빼고 다니려면 이 패스를 구매하는 게 탁월한 선택이다. 다행히 이날은 날씨가 무난했다. 아주 화창하진 않았지만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아서 좋았다. 먼저 성벽 위를 한 바퀴 쭉 돌았다. 이 긴 성벽과 내부 주택들을 그대로 보존해 둔 것이 대단하다 느껴졌다. 성벽 밖으로는 절벽과 지중해가, 안으로는 다홍색 지붕들이 보였다. 중간중간 총안과 감시탑 등도 남겨두어 정말 여기서 어떻게 병사들이 배치되었을지도 상상 가능했다.

마을 안쪽을 바라볼 수 있는 구멍 | 코토르 요새만큼이나 침입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성벽 곳곳에 포를 두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 구시가지는 온통 다홍색 지붕들로 가득이다

 사실 이날은 T1과 징동의 롤드컵 4강이 있던 날이다. 유럽 시간으로는 오전에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이 좋은 곳에 와서 온전히 도시를 감상하지 못하고, 휴대전화에 롤드컵 중계를 띠워놓은 상태로 걸어 다녔다. 성벽에서 내려와서는 동쪽 항구에 들렀다 성모 마리아 승천 대성당에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내가 가니 다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T1의 2세트 패배에 조용히 탄식하며 렉터 궁전으로 향했다.

배가 해안가 주변에 깔끔히 정렬되어 있는 게 인상 깊다 | 일요일 미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렉터 궁전은 궁전이라고 하기에는 화려함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대리석 계단과 화려한 침실 등은 기본이고, 영주가 근무했던 곳인 만큼 집무실도 있었다. 다른 궁전들과 달리 특이한 점은 사람을 가두는 상자 등 고문 도구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신기한 것들도 있지만, 내가 이 궁전에 와서 1시간 넘게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의자도 있고 와이파이도 있어 롤드컵을 보기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단지 전시품들만 구경한 것이 아니라 오래 앉아서 롤드컵을 볼 의자도 탐색했다—물론 와이파이 신호 세기도 확인했다. 적절한 자리에 앉아 3세트 페이커의 슈퍼토스와 4세트 최종 승리를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렉터 궁전은 내게 참 짜릿한 곳이 되었다.

 성벽 밖으로 나와 샌드위치를 하나 먹은 뒤, 로브리예낙이라는 요새로 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되게 늠름해 보였으나, 안에 들어가 보니 밋밋하고 허전했다. 대신 꼭대기에 올라가서 반대편에 있는 구시가지를 보면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짙은 청록색의 바다와 절벽 위에 있는 다홍색 주택들은 아무리 오래 봐도 질리지 않았다. 옆에 있던 어떤 20대 청년이 여기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길래 서로 열심히 찍어주었다—한때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선정되었다.

반대편에서 본 로브리예낙의 모습 | 칙칙한 것이 마치 약탈당하고 버려진 성 같았다

 이후 시간이 한참 떠서 Bellevue Beach라는 곳으로 가보았지만, 비수기인지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계속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다 마트에서 저녁거리와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예전 같이 동행했던 친구에게 듣기로 두브로브니크는 오래 있을수록 좋다고 했는데, 비수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자다르도 스플리트도 생각보다 볼 게 없고 허무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세 도시를 다니니 5월이나 9월에 꼭 또 한 번 오고 싶어졌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겠지만, 활기 없는 해변보다는 훨씬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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