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전 Fröttmaning 역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거진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었기에 큰 관광버스 2대에 나누어 탔다. 베를린까지는 예상보다 아주 오래 걸렸다. 4~5시간이면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무려 7시간 넘게 걸렸다. 독일 남동쪽의 뮌헨에서 북동쪽의 베를린까지 거리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선분을 그어도 불가능할 만큼 생각보다 길다는 사실을 이때서야 알게 되었다. 계속 조용히 가다 베를린에 도착하기 2시간 전쯤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복도 쪽에 앉은 사람들이 계속 3분에 한 번씩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자리를 바꿔서 가만히 앉아있는 창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했다. 즉 버스가 아우토반을 달리는 와중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자리를 바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나는 창가에 앉았어서 계속 바뀌는 옆자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과 출신지 등을 소개하고 그동안 다닌 여행지, 관심 분야 등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과정을 10번 정도 반복했는데, 똑같은 말을 영어로 계속 반복하니 금세 지쳤다. 끝나는 순간만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는지 살짝 멀미를 해서 힘들었는데, 내 뒷자리에 앉은 YN가 건네준 초콜릿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이윽고 숙소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숨이 트였다. 공기가 많이 차긴 했지만, 덕분에 정신은 금방 들었다. 같은 조 외국인 3명과 4인 도미토리를 배정받았다—하지만 열쇠는 2개만 줬다. 대충 짐만 침대에 던져두고 SM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독일에는 케밥 집이 우리나라에서의 일식당 수만큼 많지만—물론 눈대중으로 보고 추측한 거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에 가장 유명하다. 몇 군데 맛집을 소개받긴 했지만, 이미 밤이 이슥해져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따뜻하고 푸짐한 Döner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시장이 반찬이라 그랬던 걸까. 우리나라도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햄버거 집 말고 케밥 집이 많이 들어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와서 씻고는 룸메이트들과 한 마디 대화도 하지 않고 바로 뻗었다.
둘째 날
국회의사당 - TU Berlin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 공포의 지형학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날 밤보다도 더 춥게 느껴졌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발칸 반도에 있었던 터라 기온 차가 극심하게 느껴졌다. 몸을 꽁꽁 싸매고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ESN 측에서 다 알아서 해준 덕에 미리 예약해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도착해서야 알았다. 직전까지 내가 다 계획을 세우고 예약하다가 오래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다닐 수 있어 너무 편했다. 국회의사당 옥상에 올라가 유리벽 돔으로 되어 있는 전시장을 쭉 둘러보았다. 독일 제국 시절부터 시작된 의회의 역사가 쭉 설명되어 있었다. 곧이어 SM이 새로 사귄 일본인 친구 Ken과 왔다. 그들에게 합류해 개회식 전까지 같이 다니게 되었다.
'독일 국민에게'라 쓰여 있는 국회의사당 입구 | 국회의사당 옥상
개회식은 오후에 TU Berlin에서 열렸다. 그전까지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어디를 들르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20여 분 정도 시내를 뚫고 TUB 메인 캠퍼스에 바로 갔다. 일단 배가 고파 Mensa—독일에서는 학생 식당을 이렇게 부른다—에 가서 점심을 먼저 해결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TUM의 Mensa와 비슷했다. Tom Kha Gai라는 6유로짜리—심지어 TUB 학생이라면 더 싸게 먹을 수 있었다—태국 음식을 사 먹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는데 코코넛 맛이 나서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어져 그릇을 싹 비웠다. 추운 날씨에 속에 뜨신 게 들어가니 다시 힘이 났다. 남은 시간 동안 TUB 도서관을 구경하다 개회식 장소에 갔다.
전쟁 당시 지붕이 부서진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 TUB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보라돌이 곰 | 가격과 맛 모두 만족스러웠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개회식은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뒷자리 구석에 앉아 가만히 체력을 보충했다. 개회식이 끝나고는 조별로 모여 미술관에 가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와 SM 둘 다 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이때 YN가 자신의 기숙사 친구 Emi와 함께 다른 곳에 가자고 제안을 해서 바로 수락했다. 그렇게 우리 조 멘토에게 양해를 구하고 넷이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의 구조가 상당히 독특했다. 나치로부터 받은 고통과 괴로움, 두려움을 조명과 경사 등으로 불균형을 만들어 표현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적어도 눈이나 다리 중 하나는 불편함을 항상 느꼈다. 특히 큰 회색 기둥들로 가득한 야외 전시관도 있었는데, 어두운 분위기에 경사까지 더해져 으스스하고 어딘가 답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공포의 지형학이라는 곳에 갔다. 딱 들었을 때 그 이름은 어떠한 박물관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만큼 멋있다고 생각되었다. 일부를 옮겨 놓은 베를린 장벽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흑백 사진들과 글들이 있었다. 초반에는 열심히 읽다가 하루에 받아들일 수 있는 영어 양의 한계에 거의 다다라서 그만두었다. 구석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아까 조에 다시 합류하여 저녁을 먹었다. 멘토가 자신 있게 추천한 베트남 식당이었는데 맛집까지는 아니었고 평범했다—유럽에서 식당을 갈 때마다 우리나라 식당들이 참 요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한 전시관으로, 바닥에 보면 얼굴 형태의 디스크가 깔려있다 | 형제의 키스
이후 숙소랑 그리 멀지 않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갔다. 걸어가는 길에 그 유명한 형제의 키스도 볼 수 있었다. 벽화들을 지나쳐 Wintermarkt으로 갔다. 아직 12월이 아니기에 Weihnachtsmarkt(크리스마스 마켓)라 부르지 않지만, 다른 점은 전혀 없다. 사실 기대는 전혀 안 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존재조차도 10월 말에서야 알았으니까. 하지만 마켓에 딱 들어선 순간 감탄사가 나왔다. 별 모양 조명과 함께 목재로 지어진 상점들이 나열되어 있고 중앙에서 사람들이 컵을 한 잔씩 들어 호호 불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 사람들 정말 낭만 있게 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각자 Glühwein을 한 잔씩 사들고 벤치로 가 수다를 떨었다. 자연스레 나와 SM, YN 셋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한 시간 넘게 학업, 여행, 연애 등 한국말로만 가능한—물론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이 필자에게만 해당된다—대화를 하다 숙소에 돌아갔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린 Wintermarkt | Röt Glühwein
셋째 날
행진 - 브란덴부르크 문 -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 포츠다머 플라츠 - 체크포인트 찰리
오전에는 다양성을 주제로 베를린 시내를 행진했다. Mehringplatz에서 출발하여 베를린 돔까지 깃발을 흔들며 걸었다. SM과 YN, Emi는 피곤하다 하여 혼자 가게 되었는데, 지하철 역에서 말레이시아 친구를 만나 외롭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사실 국적도 말레이시아인지 확실하지 않고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그의 복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살을 에는 날씨에도 아무 거적때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든든한 Jack Wolfskin 바람막이를 입고도 몸을 바르르 떨던 나와 대조되었다. 자기는 태어나서 이렇게 추운 날씨를 처음 경험해 본다며 온몸으로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입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광장에 도착 후 행진을 시작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만났다. 일본, 중국, 대만 등 그나마 정서가 비슷한 동양인들과 주로 대화를 나누었다. 머지않아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이라고 해서 별 건 없었다. 정말로 그냥 깃발을 들고 걸으며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나는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었다. 중간에 Lummy 누나를 만났다. 일주일 만에 봤는데 체감으로는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것 같았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나를 위해 작은 선물을 건넸다. 대만에서 가져온 곤약 젤리와 차였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동안의 근황과 크로아티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대화하다 우연히 태극기를 발견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TUM 외의 다른 학교 교환학생들이었다. Lummy 누나와는 저녁에 다시 보기로 하고 한국인들에게 갔다. 다름슈타트와 프라하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영어 대화에 막 지칠 때쯤 다시 우리말로 대화하게 되어 내심 기뻤다. 목적지까지 이 한국인들과 같이 다녔다.
ESN Flag Parade | 베를린 구 박물관에서 행진을 끝냈다 | 베를린 돔
이들과 헤어지고 막바지에 합류한 SM과 오후 일정을 같이 했다. Burgermeister이라는 햄버거 맛집에 가서 맛있고 비싼 햄버거를 먹고, 프로그램 오후 행사인 City tour에 참여했다. 대본을 읽는 듯이 설명하는 초보 가이드와 함께 브란덴부르크 문과 유대인 기념물, 포츠다머 플라츠까지 둘러보았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것에 비해서는 다소 조촐하고 공사도 진행 중이라 아쉬웠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도 Wintermarkt가 열리고 있었다. 손이 너무 시려 Glühwein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Rose Glühwein을 마셔봤는데, 엄청 달지도 않으면서 Rot보다는 부드러워 마음에 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TERAS라는 케밥 집에 갔다. Lummy 누나와 만나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대기 줄로 식당이 꽉 차있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맛있었다. 안에 자리가 없어 밖에서 먹으니 맛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밤 일정이 하나 남아있어서 그녀와 오래 보진 못했다. 내가 대만에 가거나 누나가 우리나라에 오면 그때 꼭 다시 보기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SM과 숙소로 돌아온 뒤, Graffity tour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찬바람을 하루 종일 쐬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해서 나는 참여하지 않고 숙소에서 푹 쉬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정말 기절한 듯 잠에 들었다.
넷째 날
이날은 뮌헨 복귀 외에 아무 일정이 없었다. 덕분에 조식 시간에 맞춰 최대한 늦게 일어났다. 오전은 자유시간이고 출발 시각은 오후였다. 베를린에 관심도 정도 없는 나와 SM은 오전에 어디 나가지 않고 로비에 앉아 쉬었다. 마침 롤드컵 결승전을 하고 있어서 같이 T1을 응원했다. 다행히 T1이 우승한 덕에 이날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주변 식당에서 태국식 덮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니 로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전날 Club tour를 신청했던 사람들이 늦잠을 자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내려온 듯했다. 그렇게 다시 7시간 버스를 타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내 상태는 매우 초췌했지만, 베를린보다 공기가 따뜻해 벌벌 떨지 않을 수 있던 점은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는 역시나 라면을 끓여 먹은 뒤, 마침 배송된 전기장판을 깔아 푸근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편하게 잤다. 이후 열흘 간은 여행 없이 익숙한 뮌헨에만 머물며 여독을 풀고 체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