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나와 다시 인사하기
황달 때문에 좀 고생을 했지만 로나는 젖도 잘 빨고, 잠도 잘 자며 하루하루를 착하게 자라고 있었다. 꽤 일찍부터 통잠을 자는 효녀 덕에 나는 간간이 공부도 하고, 처음 느껴보는 육아의 기쁨에 푹 빠져 지냈다. 친정 엄마는 어차피 둘이 키워야 하니 부부가 손발 맞춰가며 육아하는 버릇을 들여라 하시며 아이가 생후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순한 아기가 잠도 잘 자고 젖도 잘 먹으니 ‘나 혼자서도 꽤 잘하는데?’ 우쭐해하며, 모르는 게 약인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생후 두 달 정기검진을 위해, 로나의 주치의를 만나러 동네 소아과에 갔다. 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흑인 여의사는 두툼한 손으로 아이의 여기저기를 살피고 예방 주사도 놓아주더니, 청진기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던 중 다소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난데없이 아기의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는 것이다. murmur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아 의미를 되물었고 의사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다른 단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심장 네 개의 방 벽 어딘가에 구멍이 있으면 피가 새어 나오면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툭 떨어지는 듯했지만, 아기들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귀를 기울이며 간절한 눈으로 의사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의사는 왠지 더 심각했다. 한술 더 떠서는 뭔가 의심이 되니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유전자 검사까지? 이어지는 의사의 대답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무서운 단어가 들어있었다. 우리 아기에게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미 땅속으로 떨어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소아과를 빠져 나왔다.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입이 바싹 마르고 다리가 후들대기 시작했다. 이럴 땐 우리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거대한 위로인지 모른다. 비록 그 가족은 저 멀리 한국에 있고, 우리는 겨우 카톡을 주고 받고 있지만 그게 한없이 든든했다. 며칠 째 모두가 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댔다. 가족은 필시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때의 우리는 어땠을까. 어쨌든 검사를 받아보자는 쪽으로 기울어진 끝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남편은 가족, 그중에서도 의사인 누나에게서 아닐 거라는 답을 듣고 싶었던 눈치다. 덩치만 컸지 속은 훤했다. 이 여린 남자를 위해서라도 아니라는 결과를 간절히 듣고 싶어졌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그때 깨달았다.
난 이미 객관성을 잃은 엄마여서 그런지 의사가 동양인 아기들의 얼굴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리곤 했다. “아기들 다 코도 납작하고 동그라잖아~! 말도 안 돼.” 생떼를 쓰듯 그랬지만 정말로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얌체 같은 마음이 돋아 친정 식구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 아빠, 내 동생에게는 2주간의 끔찍한 시간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주 후,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세상에 별일이 다 있었잖아.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 나왔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거라 내심 믿었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으로 2주를 꼬박 기다렸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다운증후군을 가진 다른 아이들 사진을 하루 종일 검색하고,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우리가 거기에 해당하는지 재고 또 재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아니 못했지만,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고 확신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닐거야, 그럴 리가 없어,' 했다가, '정말이면 어떡하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속으로 묻고 또 물으며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그야말로 처절한 2주였다.
2주가 되던 날,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아과에 같이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말도 없이 혼자 다녀왔다. 로나를 안고 젖을 먹이던 나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마가 넓어 큰 얼굴이 온통 회색빛이 되어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석고상 같이 굳어 버린 그 모습에 나는 생각도, 말도, 숨도 멎는 것 같았다. 남편은 내 품에 있는 로나를 들어 아기 침대에 누이고, 들고 있던 종이를 내게 건네주었다.
"맞대."
"뭐가? 왜? 왜, 어떻게?"
남편이 준 서류는 유전자검사 결과보고서였고, 로나의 21번 염색체 수가 정상인의 것과 다르다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그 내용이 내 아이의 혈액 검사지에 들어 있었다. 그 시절 버거우리만큼 많고 많던 배움의 내용 중 하필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적용이 되다니. 거기에 더 특이한 점은 모든 세포의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정상 세포와 이상 세포가 섞여 모자이크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자익 다운신드롬이라 부른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전체 다운신드롬의 5퍼센트 이내로 발생하는 독특한 유형이라는데, 젠장, 그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왜, 무슨 이유로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럴 때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하는 거였구나 싶었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이 어찌 이러한가. 삶이 어찌 이러한가. 내내 불안해했던 남편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의 아기 로나가 눈에 들어왔다. 달라진 것이 있는가? 두 달 전 환희의 기쁨을 안겨 주었던 우리 아기인데, 달라진 것이 있는가? 내 안에서 열 달을 키웠고, 내가 힘주어 낳은 우리 아기인데.
그래서 뭐, 내 딸인데. 내가 낳은 내 딸인데!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오며 가슴과 목이 뜨거우리만큼 아팠다.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의 곁에 가 앉아 머리를 안아주었다. 남편의 뜨거운 눈물이 주주룩 나에게 떨어졌고, 그 이후로는 본 적 없는 그때 그 남편의 눈물이 나는 참으로 슬펐다. 아니, 지금까지도 애잔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에겐 로나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혹독한 적응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