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시를 읽고
--1987년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飯店)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갑자기 시를 무척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몇 번을 읽어도 시인은 왜 앞뒤 맥락 없이 자기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숨길 듯 말 듯 늘어놓나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게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하는 시인의 말에서 헤매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는 제법 진한 눈썹이 있어 그렇게 유행하던 눈썹 문신을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유행하는 스타일로 문신을 해도 엄마는 '별 걸 다 한다, 나는 안 할란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보내셨다.
예순을 훌쩍 넘기시며 부쩍 나빠지는 눈 때문에 힘들어하셨다. 평생을 좋은 눈으로 지내시다 노안이 오니 눈꼬리가 짓무를 만큼 눈물이 나 화장도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하시곤 했다. 나이 드니 눈썹도 좀 그려야겠는데, 눈에 힘을 주고 눈썹을 그리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엄마에게 문신을 예쁘게 해 주겠다는 말 대신 문신의 효과가 있다는 펜슬을 사 "내가 그려줄게" 했더랬다. 열 번은 그려 드렸을까, 아니 다섯 번도 못 그려 드린 것 같다. 그냥 그때, 잘한다는 집을 찾아 엄마에게 예쁜 눈썹을 찾아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의 엄마 나이에 근처도 가지 않은 내가, 요즘 안구건조로 눈물이 자꾸 난다. 수면 부족인 날에는 더욱 눈이 시리고, 산들바람에도 눈꼬리에 찌익 눈물이 스며 나와 차갑고, 따갑다. 손수건을 늘 손에 쥐고 눈물을 닦으니 엄마 생각이 계속 난다. 불편한 눈으로 화장을 하려니 나도 힘들다. 눈썹을 그리지 않다가 사진 속에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눈썹은, 얼마나 중요한가. 아니, 요즘엔 남자들도 짙고 두꺼운 눈썹을 가지니 사람이 달라 보이지 않은가.
나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엄마였는데, 내가 먼저 엄마 손을 잡고 눈썹을 찾으러 갔어야 했다. 늙어 가는 엄마니 굳이 문신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그 좁고 부족한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와 여동생이 한참 어렸을 때 거울을 보며 화장대 앞에 앉아 앞머리를 예쁘게 만들던 엄마가 떠오른다. 앞머리를 드라이로 둥글게 말고, 마지막에 스프레이를 촤악 뿌리며 마무리를 짓곤 했던 때였다. 엄마가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냄새가 이상했다. 엄마를 바라보았고, 엄마도 이상하다 싶었는지 기다란 스프레이 캔을 바라보았다. 아뿔싸! 에프 킬러, 네가 왜 거기 있니. 여동생과 엄마, 나, 셋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던 정적이 잠시 흐른 뒤, 우린 바닥에 구르며 폭소를 했다.
여동생과 나의 머리를 소문이 날 정도로 예쁘게 묶어 주시곤 했던 야무진 엄마가, 가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때면 우린 함께 어린아이들처럼 깔깔거리고 웃곤 했다. 힘든 시집살이로 고단하셨던 엄마라 어릴 땐 무섭기도 했지만, 명랑하고 꽃같이 예뻤던 엄마.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할머니. 거울 앞에서 열심히 스프레이를 뿌리던 30대의 엄마 마음이 60대가 되어서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여자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고, 남아 있는 날 동안 타고난 모습 중에 가장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시들지 않는 꽃이 없듯, 우린 모두 나이가 들고 늙어 가지만, 그 마음은 촉촉한 한 송이 꽃이고 싶음을 깨닫는다. 박준의 시 한 편으로 이렇게, 하루종일 엄마 생각에 젖어 본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