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의 남편상이 있었다. 우직하고 꿈이 큰 사람. 평생을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 말수가 좀 적더라도 속이 깊은 사람. 아이들을 좋아해서 다자녀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 외모는, 음.. 객관적인 관점에서 잘생기진 않아도, 호감 가는 푸근한 인상이면 오케이.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고 할까. 깊은 뿌리를 내리고 숲 한가운데 우직하게 서 올라 울창한 가지와 잎을 뻗어 내는 크고 듬직한 나무 같은 사람말이다.
소개로 만난 우리는 국제 전화, 이메일, 네이트온 채팅, 싸이월드를 통해, 일명 롱디(long distance)로 시작했다. 목소리를 들으며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필체로 서로의 향기를 느끼고, 싸이월드에서 사진을 보면서 실물은 어떨까 궁금해하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소개해 준 지인에 따르면, 누나가 있지만 삼 남매 가정의 더 이상 듬직할 수 없는 전형적인 장남 스타일에, 의지가 강한 학도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 차분하게 말을 고르고 골라 신중하게 뱉었고, 아주 간혹 웃음이 터지면 의외의 유쾌함이 전해지는 듯했다. 통화하는 내내 진행과 코웃음 섞인 리액션 담당은 물론 나였다. 그땐 왜 그랬는지 얼굴 한번 보지 않은 남자에게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려주고, 일상에 대한 솔직한 감정도 표현하고, 마침내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견도 전했다.
짧은 겨울 방학이었지만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왔고, 내가 직장 생활을 하던 작은 도시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오래된 듯했지만 단정한 코듀로이 상의를 입고 오래된 차 앞에 서 있던 그.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군살이 없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남. 자. 였다. (사실 보통 키인데 그 당시 내 눈에는) 큰 키와 넓은 어깨가 듬직해 보였고, 사진에서 보던 아저씨 같은 얼굴은 어디로 가고 없고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내 인생의 오. 빠. 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 어찌하나. 좋은 건 맞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종일도 떠들 수 있는 내가 그 남자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니. 서울까지 가서 피자를 먹는데도 조요옹. 커피를 마시는 데도 고요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어색함에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통화할 때는 그렇게 말을 잘하더니, 왜 이렇게 조용하시냐고 묻는 게 다였다. 너무나 고요하고 거룩한, 진공관 속 같은 첫 데이트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왠지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온몸의 세포를 깨워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는 저녁이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해야 또 다음 방학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그는 한국에 3주 머무는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시간을 넘게 운전해 나를 만나러 왔다. 두 번째 만나던 날(피자 먹고 바로 다음 날) 드디어 방언이 터진 나. 하아, 왜 그랬을까.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부터 경기도로 전학 온 이야기,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예쁜 동생 이야기,... 무슨 전기문 쓰는 줄 알았을 텐데, 내 눈을 바라보며 끝까지 들어주었던 남자. 우리는 차 안에서 한참 동안 공통분모를 찾아 웃고 떠들며, 전날 결핍되었던 수다의 갈증을 풀었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고 쪼개며 데이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린 결혼하게 될 것이라 함께 느꼈고, 나는 이 나무 같은 남자와 함께 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함께 해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운전하며, 운동, 여행, 문화생활을 했던지. 둘 다 먹는 일에 진심인 것을 알고 또 얼마나 맛난 것을 함께 많이 먹었던지. 3주가 다 되어 그가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어느 날 아침,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뭔가 좀 다른데? 뭐지? 왠지 모르게 좀 뒤뚱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도 커 보이고, 뚜렷하던 이목구비가 길을 잃고 둥그스런 얼굴에 그냥 들어 있었다. 나와 함께 인생을 즐기는 동안 살이 다시 찐 것이었다. 풉. 나중에 들으니, 나를 만나러 오기 전 한 달 동안 그는 하루에 10km씩 달리며 살을 빼고 몸을 만들어 온 것이었다. 콩깍지가 심하게 씌어 안 보이던 것이, 너무 달라진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음 방학을 기약하며 헤어지던 날, 우리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숨기며 잠시 이별을 했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는, 훗날 결혼식을 앞두고도 결국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그냥 생긴 대로 턱시도를 입었다. 결혼식날 보니 옆통수가 많이 나온 두상이라 폐백 때 신랑 갓(익선관이란다)이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웨딩 스튜디오에서 드레스 잡아주러 함께 결혼식장에 오신 이모님이, 이거 안 들어가는 신랑은 처음 보셨다나 어쨌다나..! 하하. 어쩔 수 없다. 이미 늦었다. 그래도 나무 같은 남자인 걸.
인도양으로 철없는 신혼여행을 가고, 곧 첫 아이를 임신하고, 계획했던 휴직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그리곤 미련 털듯 비행기를 타고 남편이 된 그가 있는 미국으로 향했다. 나무 같은 이 남자와 단 둘이 낯섦 가득한 타국에서, 설렘 가득한 결혼 생활이, 아니 바로 현실이 시작된 것이다.
꿈이 큰 남자를 원했던가? 꿈이 큰 이 남자, 자신의 꿈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꿈도 컸다. 배가 다달이 불러오는데 대학원에 지원하라고 토플 공부를 하란다. 나도 공부라면 한 욕심했지만, 육아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배가 많이 나와서 책상에 의자를 당겨 앉을 수도 없는데, 꿈이 큰 남자가 하라니 또 "응~" 하고 공부를 했다.
말수가 적은 남자가 좋았던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던 이 남자, 이젠 뭐라 반응이 없어 내가 사람이랑 얘기를 하는지 정말 나무랑 얘기를 하는지 헷갈렸다. 하루는 월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트를 끌고 다른 코너로 가버려서 배 나온 임신부는 무거운 멜론을 들고 20분을 뱅글뱅글 돌아야 했다. 그뿐이랴. 남편만 쓰던 샴푸가 떨어진 걸 알곤 '왜 말을 안 해' 투덜거리며 사다 놨는데, 사흘이 지났을까. 남편의 어깨에 하얀 눈이 내려 있는 게 아닌가. 샴푸가 새것으로 교체된 것도 모르고 린스만 썼단다. 샴푸를 사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 잊고 못했단다(아이고 두야).
얼마나 듬직한 나무 같으신지, 임신부가 카펫 위를 이리저리 청소기를 밀며 움직이는데 소파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곤 하셨다. 다 끄집어내면 우아한 브런치 공간에 죄송해서 여기서 줄이겠다.
언젠가 참여했던 한 부모 교육에서 강사가 엄마들에게 물었다. 남편의 어떤 점이 좋아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점이 좋은지 얘기를 해보란다. 한 엄마는 남편의 이성적인 판단력이 너무 멋있어서 좋아했고 결혼도 했단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차갑고 때론 칼 같이 정확한 남편의 모습이 가끔 소름 돋는다고 했다. 다른 엄마는 남편의 패션 감각에 반해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큰 지금까지도 종종 몰래 비싼 옷을 사서 숨기듯이 들고 들어 온단다. 나무 같은 남편 이야기도 물론 했다. 한 바퀴 돌아 각자의 이야기가 다 끝나고 눈이 마주친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었다.
삶은 참으로 다채롭고 아기자기하다. 모순된 눈으로 바라보고, 모순된 감정을 안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꽤 정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같은 남편에게 적응하느라 많은 시간과 감정이 필요했다. 남편도 천사 같은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 적응하느라 꽤 애를 썼을 것이다. 거기에다 우리는 로나의 탄생이라는 기쁨과 시련을 함께 겪었다. 진부하지만, 시련은 우리 부부를 단단한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묶어 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큰 슬픔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삶이라는 것이 소설의 전개-갈등-절정-결론이라는 순환과정을 한 번만 겪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안다. 또 어떤 기쁨과 환희, 그리고 슬픔, 아픔이 우리네 인생에 찾아올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나무 같은 이 남자와 또 열심히 살아 보려 한다. 함께라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기쁘게 잘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