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계엄 사태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마냥 어리게만 봐왔던 나의 편견을 반성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10시간도 거뜬히 혼자 놀 수 있는 신기한 세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분노에 차, 자기 표현을 시작했다.
서울-부산을 오가며 나 살기 바빠 뉴스도 제대로 못 챙겨 보고 있을 때,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서면에서는 매일 저녁 집회가, 학생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서면, 빛의 거리
집회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 그러나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 함께 거리로 나온 학생들. 우리 청년들. 자유발언대에 올라 용감하게 마이크를 잡고 소리 높여 외치는 청년 연설가들. 우리 기성세대의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자유발언과는 본질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이돌 덕질(세븐틴)하는 덕후입니다~~~! 오빠들이 곧 군대를 갈텐데, 전쟁이 날까 걱정이 돼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덕질하게 해주세요! 오빠들, 군대 가기 전에 평화로운 세상 만들어줄게!"
"얼마 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방에만 누워 지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물에 젖은 지푸라기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국은 나 같은 지푸라기라도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작고 미약한 촛불이라도 피워 올리고 싶습니다~~!!"
"페이커와 T1(뭔지 하나도 모르겠음)을 좋아하는 게임 덕후입니다! 게임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왔습니다. 맘 편히 게임하게 *석열은 제발 내려와라."
"고3, 고2, 고1도 나왔으니 중학생 차례가 아닐까, 그래서 나왔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배웠습니다. . . . ! "
청년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함께 한 동료 교수님들이 '아, 이제 우리 기성 세대는 한 물 갔구나, 우리 시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단다. 우리는 그들을 지지해 주고, 발언에 귀 기울여 주고, 밥과 아아를 사주며 응원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게임과 덕질이 기성세대에겐 유치하고, 시간 낭비이고, 불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그 무엇일 수 있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우리 아름다운 청년들은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 그들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 옛날 민중 가요로 시작해 모두가 따라 부르지 못한 부산 서면 집회의 플레이리스트는, 주말에 여의도를 다녀간 집행부 학생들 덕에 업데이트 되었다. 서울 여의도의 플레이리스트가 부산 서면에서 울려 퍼지고, 학생들은 소리 높여 함께 노래 하고, 즐겁게 연대하였다. 집회의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는 듯 하다. 고통스럽고 힘들고,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웃으며 신이 날 수 있는 표현의 장이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면 우울증으로 힘들던 친구들도 세상에 나와 손 잡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 결판이 나기를. 체력이 소진된 학생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기말 고사도 보고 덕질도 하며 아주 보통의 하루를 감사해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