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재 Nov 28. 2023

5. 네? 소개팅을 시켜달라고요?

그날은 오랜만에 하는 남편과의 데이트였다. 신혼부부여도 서로 바빠 좀처럼 같이 있는 시간을 내지 못하던 터에 생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편이 오늘은 불금이니 고기에 술 한잔을 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 했다. 

어느 먹자골목 안 삼겹살을 파는 집으로 들어간 우리는 불판에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먹으며 시원한 맥주도 한잔했다. 한 주간의 고단함과 누수로 힘들었던 마음도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올라온 자욱한 연기에 눈이 시리기도 하고 살짝 취기도 올라오고, 선선한 날씨에 기분도 좋던 어느 저녁 밤이었다.  




밤 10시. “지잉- 지잉-”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집주인 사모님’.

순간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 여보, 집주인 전화야.... 받아야겠지?” 너무나 누수를 고치고 싶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너무나도 집주인과 통화를 하고 싶지 않은 나였다.

“일단 받아봐, 누수 고쳐준다는 전화 아니야?” “그래, 그렇겠지? 아니면 이 시간에 굳이 전화하겠어?” 나는 초록색 통화버튼 쪽으로 손가락을 그었다.     


“(심호흡하고, 최대한 상냥하게) 여보세요~” “새댁? 나야 집주인. 늦게 받네?”

“네, 안녕하세요 사모님~” “새댁, 그 뭐야, 집 물 새는 거 말이야. 그거 내가 조만간 사람 보낼 테니까 그리 알아.” 

“.... 사모님, 그건 지난번부터 계속 말씀하셨던 거잖아요. 누수 탐지하는 사람 불러준다고 하시면서 계속 연락이 없으셨는데 언제쯤 그분들이 오시나요?”

“아이 참나. 젊은 새댁, 거 성격 참 급하네! 내가 사람 보내준다고 하면 그리 알고 좀 기다리면 안 돼? 젊은 사람이 뭘 그리 참을성이 없어?”

“사모님, 누수 시작된 지 4개월이 넘어가는데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니 이 젊은 새댁, 자꾸 같은 말 하게 만드네. 고쳐준다니까 왜 이래 진짜? 좀 기다리라면 기다려! 참 나, 요즘 사람들 성질 진짜 급하다니까.”

“............ (하아.... 깊은 한숨이 올라온다.)”     


“아, 그건 그렇고, 새댁, 그 남편 회사 어디라고 그랬지?”

“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니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예전에 0000이라고 했었는데 맞나?”

“네, 맞는데,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

“거 있잖아.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우리 막내딸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혹시 남편 회사에 결혼 안 한 사람 없어? 우리 딸 좀 소개해 줄 좋은 사람 어디 없어?”     


아니 지금 이 집주인 여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세입자인 나보고 자기 딸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난 이 상황이 도통 파악이 안 되어 다시 물었다.     

“네에? 소개요? 사모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잘 이해가 안 되어서요.”

“새댁이 나 봐서 알겠지만~ 우리 막내딸이 나 닮아서 얼굴도 반반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그만하면 괜찮거든. 우리 집도 살만한 형편이고. 그리고 요즘 신붓감 1위가 초등학교 선생이잖아, 초. 등. 학. 교. 선. 생! 아니 근데 이것이 나이는 차는데 데려오는 사람마다 다 영 내 맘에 안 들어서 내가 아주 못살아 정말~! 내가 직접 찾아줘야지 안 되겠어! 새댁 남편 회사 괜찮잖아~ 주변에 결혼 안 한 괜찮은 사람 있으면 우리 딸 좀 소개해 줘~! 혼자만 결혼하지 말고~! 호호호~!”     




단전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지금 이 여자가 진정 미친 게 아닐까? 새벽 5시에 집에 들이닥친 것도 누수를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참고 참은 마당에, 미치지 않고서야 누수로 4개월째 바가지를 대놓고 잠 못 드는 세입자 부부에게, 기껏 밤 10시에 전화해서 늘어놓는 말이라는 게 자기 막내딸 선 자리를 부탁하는 것이라니... 

그것도 호. 호. 호. 웃으며.     

 

“아니요, 사모님! 그런 사람 없어요. 다 결혼했고요! 그리고 그런 사람 있다 해도 전 사모님 막내딸이 누구인지 모르니 중간에서 소개해 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누수 탐지해 주시는 분은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최대한 빨리 보내주시고요. 오신다면 미리 연락을 꼭 다시 주세요. 오실 때 저희가 집에 없을 수도 있으니 새벽 5시에 오시는 그런 일은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업자 불러주시면 그때 다시 전화 주세요. 그럼 끊겠습니다. 뚝-” 최대한 정중했지만 내 심장과 목소리는 떨렸다. 

    

남편은 집주인이 뭐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자기 딸 소개팅을 시켜달라 했고 이를 거절했다고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정말이냐며 여러 번 되물은 남편은 어이가 없다고 혼잣말을 몇 번 하다 이내 조용히 아무도 먹지 않는 고기만 구워댔다.     




난 그 전화 하나로 ‘자존심’이 무너졌다. 난 저 여자를 비록 ‘사모님’이라 부르고 ‘갑’으로 대하는 ‘세입자’이자 ‘을’의 위치이지만, 이 여자와(정확히는 이 여자의 아들과) 한 전세 계약기간에는 저이에게 또 하나의 우리 집 현관문 열쇠를 줄 의무가 없고, 새벽 5시에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저 여자를 잠옷 바람으로 맞이할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기 딸 소개팅까지 시켜달라니. 집 없는 설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 상황을 도대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서글펐다. 그리고 당장 이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나간다고 치자. 누수의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시세보다 저렴한 이 집을 나간다면 전셋값은 올라가고 있는데 이 보증금으로 과연 우리는 어디로 이사할 수 있을까. 

이 집은 지하철역과 가까워 남편이 출퇴근하기 편하고 나는 나대로 친정과 가까워 동네가 심적으로 친숙하다. 그런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더 대출받아야 마련할 수 있는 추가 보증금은 어찌할 것이며 당장 이사비와 부동산 중개수수료 같은 부대비용은?


체한 듯 답답해졌고, 뜨거운 게 올라왔다. 돈 좀 있는 집주인은 가진 게 빤한 신혼부부에게 이토록 무시에 가까운 모멸을 줘도 괜찮은 것인가. 저 여자가 어떻게 이 집의 주인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소상히 알 길이 없고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따져 묻고 싶은 건 많았다. 집주인 당신은 지금의 우리처럼 어렵게 시작한 젊은 날 같은 건 없었냐고. 혹시 있었으면서 까맣게 잊어버린 거냐고. 지금의 우리가 어떤 처연한 심정일지 정말 모르는 거냐고. 머릿속을 빙글빙글 도는 무수한 말들을 끝내 단 하나도 뱉을 수 없어 꽉 깨문 입술이 아파왔다. 


금전적으로 부모님께 도움받지 못해도 올바르게 키워주심에 감사하며 소박하게 시작하자고 한 나와 남편은 집 없는 자들이 흔히 겪는 냉혹한 현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돈이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인격과 자존심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인가? 도대체 누가 저 여자에게 그러한 당위성을 부여한 것인가.     


날씨가 선선했던 어느 밤, 고기를 굽는 자욱한 연기 사이로 마음이 서글픈 신혼부부가 그렇게 마주 앉아 있었다.      


그날 우리 둘은 서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사진 출처 : unsplash ]


매거진의 이전글 4. 새댁! 문 열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