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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Are Dec 15. 2023

도시 고속도로

2023.12.15

2023년 12월 8일.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다는 <새해에 다이어리 구매 후 앞에 몇 장 쓰고 방치하기>. 하지만 나는 다이어리를 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 만큼 일기의 저편에 놓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일기떨기 덕분에 소빵 님 블로그를 짝팔하며 10월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자 했지만, 한 번 바빠지니 11월 23일을 끝으로 그대로 놓쳐버린 일기인간 탑승선. 기록 중독인 주제에 왜 일기는 쓰지 못하는 걸까? 오늘은 씀에서 <망심이> 북토크가 있었다. 언젠간 나도 일기를 보내고 싶었는데, 일기를 쓰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기가 필요했다. 북토크 후에 도시 고속도로를 타고 본가에 들어가는 길이 좋아 '오늘 일은 일기로 꼭 써놔야지. 그리고 그 일기를 꼭 보내야지.'하는 다짐을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엄마의 말에 조금 다른 일기를 쓰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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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로 차를 구매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의 손가락만으로도 차를 끌고 서울에 온 횟수를 셀 수 있다. 변수에 취약한 나는, 보통 길이 막히고 주차가 고약한 서울에 차를 끌고 올 용기가 없다. 차를 가지고 와도 집에 세워놓고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은 광명을 통해 서울에 진입하여 바로 마포로 향했다. 이곳저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북토크까지 끝난 후에 집까지 차로 30분을 달렸다. 참석한 북토크가 좋았기에 귀가하는 길이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밤의 한적한 도시 고속도로는 제법 좋은 기억이었다. 도시에 만연했던 소음이 이질적으로 기억될 만큼 고요한, 소란한 육지의 한 겹 위에 쌓인 도시 고속도로에는 가로등과 고층 빌딩의 창에서 뻗어 나오는 빛뿐이었다. 그냥 한적한 밤의 도로와는 다르다. 무한대에 1을 더하는 것과 같은 몇 미터 차이일지라도 하늘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주황빛 도로 위에서 나는 오늘의 일기를 구성했다. 나의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 북토크 그리고 마무리로 이 시야에서 오는 좋은 기분을 덧붙이며 끝나는 일기. 일기떨기 행사를 한 번 더 기념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내가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딱 손만 씻고 나온 그때에, 집에 도착한 엄마가 내일 발인인 장례식에 급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로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조용히 내비게이션 앱에 경로 검색을 해보았다. 딱 29분이 떴다. 엄마에게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제안했으면 좋았으련만, 신유진 작가님의 ‘신발이 안 맞으면 교환하거나 버리면 되는 것을. 모자라게 사랑해 슬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한참 달리던 중에 ‘막내가 데려다주니 좋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분에게도 자랑했다고 한다. 그 말에 뿌듯했고 지금 이 상황이 즐겁고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면서, 왜 나는 항상 엄마의 뒤에 서 있는 건지 또 슬퍼졌다.

    씀에서 집으로 돌아온 경로를 그대로 다시 역행했다. 아까와 달리 또 다른 사람의 체온이 추가된 차 유리에는 습기가 찼다. 건물 입구 바로 앞에 엄마를 내려주었다. 시동을 끄고 어두운 차 안에서 혼자 장례식장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챙겨 왔는데 그냥 멍하니 기다리게 되었다. 이번 서울행에 차를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도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자체가 즐겁게 느껴져 이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이유가 달라졌다. 내가 사는 곳에 놀러 온 양친을 태우고 다닌 적도 있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가서 렌트카를 몰기도 했지만, 이 경험은 또 다른 것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우리를 태우고 다니던 익숙한 도로를 지나와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롯이 엄마의 필요에 의해 내가 운전을 자처한 첫 번째 경험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나와 달리 잠도 많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나의 모친은 그 옛날 명절에 어떻게 할머니 댁까지 운전을 한 걸까. 새벽에 우리를 깨워 뒷좌석에 싣고 출발했던 그때는 과거라는 시점에 존재하는 분명한 현실인데 기억은커녕 상상조차 안 된다. 지금보다 도로 상황도 나빠 열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던 그 길을 어떻게 혼자 운전했을까. 핸들 열선도 없던 시기에 장갑을 항상 글러브박스에 넣어두었던, 지금도 추위를 많이 타는 그. 중고로 구매한 내 차에도 해당 옵션이 없어 겨울에 운전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는 운전을 하지 않지만, 1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97년형 아반떼를 몰고 다니던 무사고 경력자 베스트 드라이버. 그가 우리집의 원앤온리 드라이버였기에, 나는 차를 산 이후에 그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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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스레 우리가 자라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봤냐고 물으니, 상상도 안 해봤다던 엄마. “이러려고 차 가져왔네~”라고 말하며 웃던 엄마. 엄마가 필요하다고 전화하면 바로 차를 끌고 올라와 태우고 어디든 가겠다고 외쳤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내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어 일이 바뀌었다. 그리고 벌써 나의 대답을 확신할 수 없게 된 초라하고 모자란 나. 오늘의 일로 더 자주 나의 모친을 생각하게 될 나. 24년엔 그의 뒤에 서서 겨우 따라가는 나의 사랑이 한 걸음 더 그의 뒷모습에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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