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함
2주 전, 본가에 도착해 하룻밤 자고 일어난 추석 당일 오전 10시. 온라인 미팅을 통해 갑작스레 정해진 일본행 출장은 90% 흥미롭지 못하다. '전혀'라고 표현하기엔 출장비로 비행기와 숙소를 해결하여 타지로 떠나는 것이기에, 대략적인 예약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정돈되어 기대되기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운동은 못 갔지만 그만큼 여유롭게 씻고, 아침을 먹고, 책을 조금 읽다가 집을 나섰다. 챙겨야 할 물건이 있어 차에 캐리어와 백팩 그리고 나를 싣고 오피스로 향했다. 업무를 처리하고,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택시를 불러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10분 남짓, 7500원이라니. 물가가 무섭다.
내 불안과 강박은 더 무섭다.
10시 버스인데 ‘출근시간이라고 막히는 거 아냐?’, ‘가까운 거리라고 안 잡히면 어떡해?’ 걱정하며 택시를 9시 25분에 불렀고, 2분 뒤 도착이라는 택시와 함께 40분도 되기 전에 정류장에 도착했으니까.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시집을 읽으며 앞 배차의 공항버스 두 대를 보내고 나의 것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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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해 둔 환전을 진행하고 짐을 맡기려고 했다. 내가 예약한 항공사에 할당된 카운터는 아주 많았으나 한 열은 닫혀 있었기에 그 뒤편으로 향했다. 들어가려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여기는 환승 게이트라고, 셀프체크인 후 B카운터로 가라고 했다.
B카운터는 혼잡했다. 생각… 아니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밀렸지, 왜 이렇게 다들 미리 대기선 앞에 나가있지?
요즘은 수속이 참 빠르다. 대부분이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하고, 공항에 도착해 셀프체크인을 하고. 부칠 짐이 있는 경우에 빠르게 짐만 카운터에 밀어 넣고 여행의 첫발을 끝낸다. 물론 나도 이틀 전에 모바일 체크인을 마친 상태였다.
셀프수하물.
관리해 주는 사람 없이 사람들은 짧아 보이는 대기줄이 보이면 일단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층층이 쌓여서 혼잡도를 높였다.
셀프체크인을 할 때 탑승권과 함께 출력된 수하물태그가 내 손에 들려 있다. 긴장된다.
20대의 젊은 나이. 올해에 논란의 여지가 생겼지만 나는 그냥 원래의 나이를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서른이 되고 싶었으니까. 하여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젊은 나이다. 사실은, 어린 나이다. (새로운 걸 시도하기 전에 많이 알아보는 성격 탓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갑작스러움은 당황스럽다. 게다가 양 옆으로 그리고 내 뒤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천천히 기계에 표시된 지시사항을 따르며 수하물을 부친다. 태그의 스티커를 떼는데 잠시 혼란스럽다. 태그를 앞뒤로 뒤집으며 고민하니 그 넓은 카운터 앞을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유일한 직원이 날 캐치했다.
“여기를 떼서 이렇게 넣고 붙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또 머뭇대면 달려오실까 긴장한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며 일을 마무리한다. 눈치가 빠른 편이라 다행이다. 심장에 진땀이 났다.
셀프 수하물 안내자인 모니터 씨가 안내한 5분을 앞에서 대기한 후, 출국 심사를 하러 갔다. 출국심사는 진작 셀프가 되었었지. 여권을 뒤집어 스캔하고 손가락을 대고, 문이 열린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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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행기를 타는 곳은 24번 게이트이다. 반대쪽 끝으로 걸어가야 한다. 시간도 남았으니 천천히 구경을 하며 걷는다. 가운데에 흘러가는 무빙워크도 마다한다. 천천히 걷는다.
면세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을 제외하고 카페, 식사 등을 위한 가게들은 대부분 익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상호명은 간판의 우측 끝자락에 익숙한 알파벳 세 개가 적혀 있다. 둥글둥글한 하늘색과 노란색 로고의.
식수대에서 입을 축인다. 작은 서점에서 책을 한 번 훑고 나왔다. 또 마주한 식수대에서 다시금 입을 축인다.
어떤 도넛 가게 옆에 마련된 24번 게이트. 벤치에 앉아 다시 시집을 읽는다. 달콤한 냄새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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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에 나서며 챙긴 책 중 하나는 박서련 작가님의 단편집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두 해 전, 젊은 작가상에서 읽었던 단편이자 본 책의 표제작이 가장 앞에 실려 있다. 비행기가 10분 늦어졌다. 이륙 전에 첫 글을 다 읽었다.
당신은 계속해서 대화창에 엄마를 입력한다. XX. XX. XX. XX. 엄마, 엄마라고 그만해. 계속 욕 쓰면 아이디 정지 먹어. 엄마가 왜 욕이야? 내가 네 엄만데. (중략) XX, 울어? XX, 괜찮아?
심장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비행기는 곧 이륙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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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후 나이 듦의 과정 속에 있다. 자연이 그렇다. 몸을 전부 갈아 끼울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우리가 시간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은 여전하다.
세상도 나이가 든다. 누군가는 이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기술의 수준을 보면 위로 올라가기는 하는데, 앞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 건가?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지만 그 빛깔이 아름다운가? 새것의 광택이 빛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그 존재는 빛나지만 주변은 그만큼 어두워지는 것은 아닐까.
마침 언니들과 내년 초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다. 오늘 공항에 오면서도 그와 관련된 메시지를 나누었다. 오늘의 일을 곱씹으며 내년 여행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이 또한 오만이다. 나는 내년의 부모님이 아니라 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나의 미래를. 내가 맞이할 나의 이후의 시간을.
‘나이 들었다.’고 하기도 민망한 나이의 나도 이미 버겁다. 내가 정말 더 나이를 먹으면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노화라던가 하는 것들은 흠이 아니다. 자연스러움.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은 언제까지고 메이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미래 사이에 담을 쌓아나간다. 벽돌이 끊임없이 공급된다.
육신은 물리적 상공에 있는 지금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이륙이 내 마음의 침체를 상쇄해 주길 바랐다.
곧 비행기는 착륙한다.
그럼 내 마음은,
이토록 처절하게는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