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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지 Nov 09. 2023

미국 정착기, 급할수록 천천히

<다시 쓰는 성장일기> by 빅이지

<다시 쓰는 성장일기> by 빅이지 

2023년 10월 1일. 드디어 영주권을 가지고 미국 땅을 밞았다.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곳은 시카고지만, 아직 뉴욕에 남아 있는 차를 처리해야 해서, 당분간은 뉴욕에 있는 지인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 미국에서 차량 구매할 때는 웬만하면 독일 3사는 피하자 ”   

   

우리가 타던 차는 아우디 A4 2010년형 모델로, 2018년 남편이 처음 미국에 유학 왔을 때, 약 만불 그러니까 당시 환율로 1,200만 원가량 주고 중고로 구입하였다. 이 차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와 함께 미국 최남단 마이애미에서 동부 뉴욕을 거쳐 중부 시카고까지 가게 될 차로, 그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넉넉지 못한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차 수리에 들어간 비용이 족히 차 값의 세배는 넘으니 말이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독일 3사, 즉 아우디, 벤츠, BMW는 웬만하면 사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인 즉 작은 부품이라도 하나 고장 났다 하면 수리비가 정말 억~수로 많이 깨지기 때문이다.      


진작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당시 미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유학을 왔던 나의 사랑스러운 남편은 마이애미의 따사로운 햇살에 반해, 차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중고로 구입하려다가, 내 뚜껑이 열리게 했고, 아쉬운 대로 지붕에 썬루프가 장착된 이 차를 구입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다른 차와 배터리 점프를 시도하다가, 같은 극끼리 연결해야 하는 걸 다른 극끼리 연결해서 수리비만 몇 천불을 냈고, 뉴욕에 오자마자 트럭에 받치는 사고로 또다시 차 수리비용으로 7천 불이 나왔다. 보험사에서는 차의 잔존 가치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왔다며, 폐차하라고 했지만 당장 새 차를 사기엔 경제적 부담이 있어 그냥 고쳐서 사용하기로 했다.


이련 차다 보니 누구한테 팔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비자가 만료되고 영주권을 다시 받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차량의 소유주를 회사 동료 앞으로 변경해 두었고, 내 차는 두 달째 안 그래도 협소한 회사 주차장에 방치되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배경이었고, 최대한 빨리 차를 가지고 시카고로 가기 위하여, 한국인의 ‘빨리! 빨리!’ 정신을 발휘하여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서두르기만 했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급할수록 더 천천히”      


차량의 소유권을 이전받고 이 차를 우리 명의로 새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차량등록국(DMB)에서 운전면허증부터 재발급받아야 했다. 필기와 주행 시험을 모두 봐야 하는 뉴욕과는 달리, 뉴저지의 경우, 한국에서 운전경력 1년 이상이면, 필기시험만으로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모두 절약하기 위해 뉴저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로 결정하고 거주지를 뉴저지에 사는 지인집으로 변경하였다.


뉴욕이라면 어디든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했겠지만, 우리는 뉴저지, 그중에서도 운전면허시험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시험장을 알아보다 보니, 차를 렌트하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를 렌트한 날 운전면허시험도 차량 등록도 한 번에 끝내려고, 급하게 남편 명의로 차량 소유권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일은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바로 남편의 거주지 증빙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시험을 보려면 거주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남편이 가져간 우편물이 거주지 증빙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운전면허증이 없으니 자동으로 차량 등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DMB에서 인정해 주는 정식 우편물을 받기 위해 2주를 더 기다려야 했고, 시험을 보기 위해 또다시 차를 렌트해야 했다. 남편은 뉴저지의 경우 차량을 등록해도 운이 나쁘면 차량 번호판을 받는데 몇 주가 걸린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차량 등록을 대행해 주는 업체에 위탁하자고 했다. 위탁수수료는 급행으로 하면 250불이었고, 차량 등록 비용까지 포함해서 405불을 지불했다. 돈이 살짝 아까웠지만 뉴저지까지 차를 렌트해서 오는 비용과 우리가 앞으로 들일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일만 제대로 처리된다면 우리는 바로 다음날이라도 플레이트를 받아서 시카고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우리 차가 이미 폐차가 된 차량이라서, DMB에서 지정한 곳에서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만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검사소가 뉴저지 전체에 3곳밖에 없고, 가장 빠른 검사 날짜는 12월 27일로 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200불의 위탁 수수료를 포함해 400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돈도 돈이지만, 10월 말까지는 차를 빼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는데, 플레이트가 없어서 차를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에 우리는 400불이라는 거금을 주고 차를 견인해서 지인 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나마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주차비로 또 6-7백 불을 써야 했을 것이다.


이번일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뭐든 잘 알아보고, 한 번에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르게 처리하려고 꼼수를 부리다가, 결국 시간, 노력, 돈 모두 배가 들었으니 말이다. 뉴욕에서 했더라면 마음고생 안 하고, 이미 시카고에 차를 가지고 갔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3년 11월 8일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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