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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건 Mar 26. 2024

아버지와 라면을 끓이며

  아버지와 나는 담배창고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연탄불을 꺼낸다. 양은 냄비가 그 위에 올라가고 나는 라면을 넣고 수프를 넣는다. 달걀까지 탁 얹었다. 왼손엔 냄비 뚜껑을 뒤집고 오른손은 라면을 집어 들었다. 입으로 후후 라면을 정신없이 부는데 빗속 안개 위로 입김이 올라간다.      


  아버지와 나는 옆에 나란히 앉았다. 라면 먹는 초등학생 3학년을 보시면서 담배 태우시며 한마디 하신다.

“허, 녀석, 맛있나?" 

“예.” 

다시 담배 한 모금 들이켜신다. 나는 라면이 맛있다. 아버지는 담배가 맛있는가 보다. 둘 다 맛있는 거 먹고 있으니 다행이다.      


  세상에서 어떤 라면도 그때 맛을 따라갈 순 없다. 아버지 담배 채취와 내 라면이 어우러진 내 머릿속에만 있는 라면 맛이니까. 마트에서 나는 그 라면을 매일 사서 비가 오면 그 라면을 끓이고 싶다.    

 

  아버지는 국수를 좋아하셨다. 벼농사가 한창인데 나는 새참으로 국수를 끓여 갔다. 집에서 논으로 가져가는 동안 국수가 퉁퉁 불었다. 초등학생이 겨우 끓여낸 국수를 아버지와 할머니는


“와, 맛있네, 어떻게 끓였노?”

“멸치, 김치 넣었어요.”

 라면수프까지 넣었는데 이건 말 안 했다.

‘국수가 불었는데 왜 맛있지? 나는 맛없는데.’   

  

  아버지는 폐암으로 입원하시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너도 밥 먹어야지.” 

쇠약해지신 몸에도 내 밥을 먼저 챙기셨다. 

”먼저 드시고 나서 먹을게요."

두 숟가락 드시고 수저를 내려놓으셨다. 예전에 내가 끓여 드렸던 국수 다시 끓이고 싶다. 조금 불더라도.    

  

  벚꽃이 피는 날, 아버지는 일찍 가셨다. 평소 감정 표현을 안 하셔서 로봇처럼 무뚝뚝하게 느껴진 아버지. 양철 몸속에 따뜻한 사랑을 숨기고 낯간지러운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하셨지만, 항상 내 옆에 계셨다. 그게 아버지 애정 표현이었다. 라면과 국수를 잘 끓이지만 이제 혼자 먹어야 한다. 아버지와 같이 라면을 다시 끓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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