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알베르게
부르고스 지역의 첫 도시인 레데시아 델 까미노라는 곳을 오늘의 목적지로 삼았다. 까미노 닌자 앱으로 약 30km정도 되는 거리였다.
감기 기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광활한 대지는 걷기에 편했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구간이었다. 길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힘을 낼 수 없었다.
지평선 너머엔 또다른 지평선이 있을뿐...
길을 걷다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면 체감상 30분은 지났어야 하는데 막상 1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비바람을 뚫고 뙤양볕을 걸으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착지가 보이지 않는 길, 동행이 없는 길, 외롭고 쓸쓸한 이 길이 마치 지금의 내 인생을 표상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순례자의 길에 도전한 것이기도 했다.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고 싶어서'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느리지만 멈춤없이 걷던 나는 시간의 힘으로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평점이 가장 높은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알베르게에 들어선 나의 코에는 템버린즈 000과 비슷한 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귀로는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왔다. 입장부터 기분이 좋았다. 세탁과 건조, 숙박과 석식, 조식을 모두 포함한 가격은 40유로가 채 되지 않았다. 알베르게 호스트의 이름은 호세였다.
저녁 식사시간은 호세와의 대화로 매우 즐거웠다. 그는 매일 같은 메뉴를 만들어 순례자에게 대접했다. 이틀이상 머무는 순례객은 없기 때문에 굳이 같은 메뉴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한 메뉴에 정진해서 요리 실력을 키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저녁은 매우 맛있었다.
Easy Connection
저녁식사 시간의 주요 주제였다. 호세는 가벼운 관계가 좋아 알베르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가벼운 관계이다보니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싸울 일이 없으며, 그 사람의 부정적인 기운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부터 나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대의 생각을 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가벼운 관계가 증가했기 때문에 개인주의 경향이 더욱 강해지며, 그에 따라 사회는 분열된다는 것이다.
유튜브와 인스타는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컨텐츠를 제공한다. 간혹 불호의 컨텐츠가 나오면 차단하기 등을 누른다. 또한 특정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자신의 행동성을 정당화 한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의 컨텐츠를 흡수하다보니 편향적 사고가 강해지고, 이는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에까지 이어진다. 그 결과가 남녀갈등, 세대갈등, 좌우갈등이 발생한다. 상대방을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손절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벼운 관계가 싫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답없는 고민을 하며 내일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