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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ㅡQuestion Nov 18. 2023

황토로 물든 침낭

욕심에 대한 고찰

벤또사를 지나 나헤라를 가던 길, 나는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바로 욕심 때문에...


이미 비에 젖고, 흙에 더럽혀진 신발이지만 끈적한 진흙까지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갈과 돌들을 위주로 밟으며 올라갔다. 그러다 밟은 돌은 불균형했고, 10kg이 넘는 가방은 내가 중심 잡는 것을 방해했다. 때문에 나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배낭에 들어가지도 않고, 가방에 밀착 연결도 불가능했던 2.5kg짜리 침낭이 나의 머리 대신 황토로 물들었다. 걷는 내내 '경량화 침낭을 샀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나의 걸음을 방해하던 침낭이 나를 살렸다. 발목과 다른 부위도 다행히 멀쩡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안도의 한숨과 빨라진 심장박동이 느려지면서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별거 아닌 것에 욕심을 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손해를 보지 않았나? 쓸모없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적이 있지 않은가?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전자는 꽤 있었던 것 같지만, 후자는 없었다. 별로 없었다. 애초에 쓸모없는 물건, 필요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에 좋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며, 그에 따라 행운을 가져다준 사람이 많다. 특히 금전운은 말할 것 없이 좋았다. 중학생 때 지역 송년회 장학금을 수여한 것도, 고등학생 때 삼성꿈장학(SOS장학)을 알게 된 것도, 대학생 때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수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에 좋지 않은 성적에도 많은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주변 사람들이 가져다준 행운이었다. 항상 가족과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별거 아닌 것에 욕심을 부리다가 어마무시한 손해로 다가온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왜 소탐대실을 할까?


첫 번째 이유는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 때 학업에 충실하지 않고 공모전을 주야장천 도전했다. 그 이유는 시험공부보다 재밌었고, 입상하면 상금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로스쿨을 간다던가, 취업을 할 때 공모전 입상보다 학점이 더 중요하다. 즉 나는 단기 쾌락과 상금때문에 취업과 로스쿨에 중요한 학점을 놓쳤다.


두 번째 이유는 리스크 관리의 실패이다. 돌이 고정되어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습관과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는 습관을 갖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말을 잡음으로 나의 점수가 높아지지만, 포진이 불리해지거나 도망갈 곳이 없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눈앞의 말을 잡지 않고 또는 나의 말 하나를 포기해서 유리한 포진을 만들거나 상대방의 말 두 개를 잡는 것을 노력하고 있다. 아직 습관화하지 못했지만, 예전의 나보다 발전했다.




자아성찰을 하며 걷던 나는 나헤라에 도착했다. 나헤라의 알베르게는 가격대비 좋았다. 6유로라는 가격으로 따뜻한 물과, 침낭커버, 부엌과 식기도구 사용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약 내가 친구들과 갔더라면 요리를 만들어 먹었을 것 같았다. 나는 피곤한 몸으로 샤워를 한 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식사를 하러 갔다.


Cerveceria Hamburgueseria LAS OCAS

사장님께서 햄버거에 자부심이 있으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굉장히 맛있는 집이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중 프랑스인 부부가 들어왔다. 가게에 테이블이 없어 동석하게 됐다. 그들과 간단하게 대화를 한 뒤 나는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잔돈이 1유로 더 많았다. 나는 매장에 들어가 사정을 말한 뒤 2유로를 주고 나왔다. 그 이유는 암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숙소에 와 일기를 쓰며 깨달았다. 친절하고 맛있는 집에 대한 팁이라고 생각하며 해프닝에 대한 헛웃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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