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lㅡQuestion Nov 11. 2023

두 번째 태풍을 마주하며

순례자란 무엇인가?

로그로뇨

로그로뇨에서 떠나는 나는 반겨주는 것은 우박과 바람이었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걷던 나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바로 KIA차 매장의 관리자였다. 매장을 열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에 순례객들을 위해 대피 공간을 내어준 것이다. 스페인에서 한국 브랜드를 만난 기쁨으로 일단 들어갔다.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나바레따라는 마을까지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나는 약간 고민을 하다가 비도 점점 그쳐갔기 때문에 걸어가기로 다짐하고 매장을 떠났다.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우산과 함께 나는 묵묵히 걸어갔지만, 다시 KIA 매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시 밖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지하 도보가 물에 침수된 것이었다.


나는 까미노이기 때문에 택시는 타지 않겠습니다.

다시 매장에 들어선 나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었지만 스페인 남자의 한마디에 다시 가방을 메고 매장 밖을 나섰다. 침수된 지하 인도의 수심은 고작 나의 무릎을 조금 넘은 정도였다. 그곳 주민들이 지하 도보 앞에서 돌아가길래 매우 깊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낮았다. 


보통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위험과 두려움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순례자가 비가 오면 택시를 타고, 어깨가 무거우면 탁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나는 스스로 문답을 진행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이유가 단순 관광인가?

무릎과 어깨, 발이 아프지만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정도의 부상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힘든 순간에 마음대로 삶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인생의 시련을 마주했을 때, 그 구간을 스킵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야곱과 그의 제자들은 스페인의 마을에서 환영을 받았나?

중세 순례자들이 받았던 귀족의 탄압, 강도의 위험이 현존하나?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 이용하는 대중교통과 탁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순례자의 길에 대한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니 공장 앞의 웅덩이를 건너게 됐다. 물의 높이는 정강이 정도밖에 오지 않았지만, 나무 조각 등의 이물질이 많았기 때문에 발이 아팠다. 이 날은 다른 날보다 더욱더 집에 있는 군화가 떠올랐다. 나는 왜 군화가 아닌 호카를 신고 왔을까?라는 약간의 후회도 들었다. 또한, 왜 우비를 사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밀려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내 삶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면"으로 과거에 머무른 채 현재를 수정하지 않는 것이 후회이기 때문이다. 후회는 그저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일 뿐이다. 불만만을 가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다면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반성은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깨닫고 받아들인 뒤 현재를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잘못을 수정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않은 반성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과연 나는 반성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후회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우비의 필요성을 깨달았음에도 우산을 사지 않은 나는 후회의 습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반성의 습관을 갖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