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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ㅡQuestion Dec 23. 2023

산볼을 향하며

허허벌판 위의 알베르게

산 위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허허벌판에 건물 하나가 보인다. 그 건물은 소규모의 알베르게인데, 이곳은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다. 나는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인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원래 씻을 수도 없고, 그저 눈만 붙이고 가던 장소였지만, 어느 사람이 인수하여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온수도 잘 나오고 편안하게 잘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리모델링 전에 한번 와보고 싶었다.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저 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배고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말이다. 풍족하지 않은 곳에서 더 진솔한 이야기가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까?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족을 대하는 것과 친구를 대하는 것과 직장 동료를 대하는 것은 사회적 역할에 따라,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찌질한 행동을 봤을 때, 지행합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을 때, 결국 그 모든 것은 가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다.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진솔한 편이라고 믿는다. 애초에 내가 그들의 원래 모습을 모르는데, 가면을 썼는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그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곳에서만큼은 진실된 행동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 시기하는 마음 등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행동에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예의를 지키고 나의 행동에 제어장치를 제거했다. 그래서 더욱 빠르게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제시와 오스트리아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조그마한 수영장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일랜드 친구를 만났다. 나는 빨래를 하기 위해 그 옆으로 갔다.


한국이름이 리였던가..


마침내 친구가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아일랜드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음악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원탁 테이블로 사람들이 모였다. 식사를 신청한 사람은 9명인데 호스트의 착각으로 10인분을 만들었다. 제시는 자신과의 의사소통 오류로 10인분을 만들었으니, 값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신기했다.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불로 숙박비와 식사비를 낸다. 어떻게 하면 돈을 받지 않고 저녁식사를 신청했다는 오해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호스트의 착오에 대한 비용을 손님이 내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은 정말 신기했다. 중국인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을까? 괜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그녀의 생각을 알 순 없지만 인격적으로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탁 테이블에 앉아 샐러드와 빠예야를 먹었다. 치킨 빠예야는 정말 맛있었다. 후추와 소금을 뿌리니 감칠맛이 더욱 증폭되어 진짜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한 뒤 나는 별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하늘의 구름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허허벌판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무와 풀뿐인 곳에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세상은 시끄럽고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이곳에서의 하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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