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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ㅡQuestion Dec 30. 2023

메마른 땅에 피어난 꽃

부르고스를 지나면 메세타에 들어서게 된다. 여름의 메세타는 우리에게 뙤약볕과 건조함을 선물해 주고, 겨울엔 칼바람을 선물해 준다. 나는 메세타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걷다 만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메세타를 싫어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을 걷기는 정말 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메세타에 들어선 순간 오전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출발했다. 그리고 가는 동안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도심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아니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아름다운 별과 별자리를 볼 수 있을까?


사진에 담기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내릴 수 없었다.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저 만끽하며 걷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뜬다. 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기 때문에 나의 등 뒤에서 해가 떠오른다.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삭막한 민둥산너머 올라오는 태양은 그것 또한 장관이다. 주황색과 빨간색 그 중간의 색감을 가진 빛이 나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 줄 때면, 나는 벌써 2시간 이상 걸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산볼을 지나 걷던 중 갈라진 땅 위에 피어난 개양귀비가 보였다.


그 꽃을 바라보며 대부분의 사람이 직관적으로 희망을 느끼듯이 나 또한 희망을 봤다. 삶이 척박하더라도 결국 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직관의 너머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피어난 꽃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이후 무한경쟁의 삶 속에서 자신의 노후가 책임져지지 않는 삶(국가, 가족 등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삶),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 이기적으로 바뀐 사회는 마치 메마른 땅과 같았고, 그곳에서 피어난 개양귀비는 이기(異氣, 利己)의 상징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는가를 돌아보며 보아디야 델 까미노를 향해 갔다. 그러던 중 길을 잃어버렸다...


분명 나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는데,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옆에 다음 목적지라고 생각되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점차 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순례자의 길의 마을이 아닌 주변마을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걸었는데,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나는 까미노 닌자라는 어플을 켜고 나의 위치를 확인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점점 멀어졌던 마을이 나의 목적지였다. 나는 다시 그 마을로 향했다. 길을 우회해서 갔기 때문에 그 마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여러 마을을 지나 나는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평점이 높은 알베르게였지만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빨리 만원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곧장 알베르게로 향했다. 다행히 나는 제일 먼저 도착해서 단독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낮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의 귀에는 빗소리와 함께 주인과 손님의 대화가 들렸다. 손님은 스페인어인지 독일어인지로 뭔가를 물어봤고, 주인은 영어로 '숙박은 가능하지만 저녁식사는 불가능해요. 이미 요리를 시작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손님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둘은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텐데, 왜 그러지 않는지 의아했다. 내가 호스트라면 먼저 손님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여줄 것이다. 손님도 다른 알베르게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번역기를 사용해서 숙박하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일까? 자존심 때문일까?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타인과 의사소통할 때 자존심이나 자부심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거부한 경우가 없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저녁식사에는 프랑스인 2명, 잉글랜드 부부 2명 그리고 내가 있었다. 소통을 하던 중 나는 문뜩 궁금했다. 누구는 UK출신이라고 하고, 누구는 잉글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궁금증을 가진 채 식사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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