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솔부는 책바람 Nov 04. 2023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책리뷰]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에트우드 / 황금가지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시하며 살았다.

무시한다는 건 무지와 달리,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즉시 변화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데워지는 목욕물처럼  자기도 모르게 끓는 물에 익어 죽어 버리는 거다.

물론 신문에는 많은 뉴스가 있었다.

(중략)

우리는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신문 가장자리의 여백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훨씬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격 속에서 살았다.


시녀 이야기 p.88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을 받는 '마거릿 애트우드'는 어린 시절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오지를 많이 다녔다.

그런 그녀가 오지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다. 여섯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일찌감치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후 토톤토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1살에 '서클 게임'이라는 시집으로 등단했고 다작하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이며 여성주의자이자 정치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영미소설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매년 노벨문학상후보자로 거론되는 현대 영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미드 /  The Handmaid's Tale



이 작품은 미드 The Handmaid's Tale의 원작으로서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화자되는 책이다.



21세기 미국의 암울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낸 SF 소설이다.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질병 등으로 사회가 혼란하고 출생률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상태에서 극우 기독교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길리아드'라는 정권을 수립한다.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인 길리아드 정권은 여성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는데 모든 여성들을 직장에서 해고하고 은행계좌를 막아버리는 등 여성들의 경제권을 박탈하고 재산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의 독백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책 내용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었던 터라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땐 쉽게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초반부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마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경한 일이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들을 가임 능력에 따라 여러 계급을 나누어 지배계급자의 배우자 아내, 지배층의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여자 시녀, 레드 센터에서 시녀들을 교육하는 아주머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은 집안일을 하는 하녀, 정권에 반항하는 여성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이 든 여성은 비여성으로 구분되어 독극물 폐기 장소인 콜로니로 끌려가서 노동하게 된다.



『시녀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남편과 딸을 빼앗긴 한 여성이 시녀로 전락하게 되면서 자신과 다른 시녀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기록한 소설이다.



길리아드에서 시녀라는 계급은 오로지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여겨지고 자유마저 통제당한다.

시녀들은 국가적 자원으로서 삼엄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되고 시장 갈 때만 외출이 허락되고 항상 둘씩 짝을 지어 다녀야 한다.

서로가 감시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행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남자들 또한 권력에 따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계급이 낮은 자들은 여성들과 사적인 접촉을 할 수도 없고 이를 어기면 어김없이 처형을 당한다.



우리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첩이나, 게이샤나 창녀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그 범주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리들에게서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고, 은밀한 욕망이 꽃 필 여지도 전혀 없다.

특별한 총애 따위는 그쪽이나 우리 쪽에서 미리 알아서 정리할 테니 사랑이 싹틀 발판조차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 다니는 성배다.


시녀 이야기 p.238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였던 주인공은 길리아드 정권이 들어선 뒤 시행된 계급제에 따라 프레드라는 사령관의 시녀가 되어 피의 상징인 빨간옷을 입고 그의 아이를 낳는 도구가 된다.



자신의 본명조차 지워진 채 사령관의 이름에 따라 '오브프레드(of Fred)' 즉 '프레드 것'으로 불리며 사령관의 소유물로서 출산의 역할만을 해야 했다.

아이를 낳기 위한 그들의 성적인 결합은 '성스러운 의례'로 불리는데 사령관의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다.



철저히 자궁 역할만 하는 시녀들은 임신을 하지 못하면 콜로니로 추방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된다.



평범했던 과거를 가졌던 오브프레드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자신의 딸이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다.



그녀는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며 신변의 위협을 느껴가던 중 사령관의 아내로부터 사령관의 운전기사 '닉'을 통해 임신을 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합법적이지 않은 일이기에 목숨을 건 모험이었지만 선택권이 없던 그녀는 그렇게 닉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닉과 은밀한 만남이 이어지면서 오브프레드는 임신을 하게 되고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느끼며 사랑을 꿈꾸지만 어느 날 들이닥친 감시자들에 의해 체포당하게 되고 어딘가로 끌려가게 된다.

과연 오브프레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가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읽게 되는 소설이다.

여성들의 인권이 높아지면서 그것에 위협을 느꼈던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여성들을 경제 기반과 교육 등에서 철저히 배제시키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필연적이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종속되고 여러 계급으로 나뉘면서 생산의 도구로만 여겨진다.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을 소설로 쓰지 않는다"라는 애트우드의 말처럼 과거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가족이나 남자형제의 생계와 학업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았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여성 스스로 자발적으로 공장이나 남의집살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대를 잇기 위해 노력하는데 부인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첩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낳으려고 했던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지금도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의 인권과 자유가 억압된 채 운전과 교육을 금지시키고 조혼이 성행하며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명예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권 신장이 많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나라에 따라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21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1985년도에 출간한 이 작품은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길리어드에서 자행되는 조혼과 대리모 문제는 소설 속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몇몇 국가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뿌리 깊이 내린 타파되어야 할 악습이다.



작가는 여성의 인권을 넘어 보편적 인권에 적극적인 관심과 경각심을 가져주길 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시녀 이야기』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후속작을 기다려왔다.

34년 만에 출간한 후속작 '증언들'에서는 세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루며 길리아드 정권의 몰락의 변화를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