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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부는 책바람 Oct 25. 2023

인간은 모두 사형수다

[책리뷰]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학창 시절 새 학기만 되면 남모를 고민과 함께 스 트레스를 받곤 했다.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런 거리 김 없이 무리 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신기했고 상대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내가 낯선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차갑게 생긴 외모인 데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의외로 수더분한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는 깊은 사귐 속에 지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문제는 나의 예민한 성격 탓에 혼자만 겪는 것으로 생각해서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부모님에게조차 말씀드려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와 같이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이러한 현상이 결코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방인 p.13>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몇 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 뫼르소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뫼르소는 엄마의 부고 소식에 어떤 슬픔과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신이 사는 알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양로원으로 가는 것을 번거로워하였고 장례식 내내 어떠한 애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 도착할 때쯤엔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넘어 기쁨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 p.37>



뫼르소는 장례식이 끝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수영을 하기 위해 간 해수욕장에서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마리라는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해수욕을 즐기고 저녁엔 희극영화를 관람하며 함께 밤을 보낸다.

이후 같은 건물에 사는 레몽이라는 남자와 친구가 되는데 레몽의 연애사에 휘말리며 우발적인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이 책은 총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엄마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뫼르소의 일상과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뫼르소가 기소되어 감옥에서 지내는 모습과 재판을 받는 과정이 담겨있다.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이방인 p.118>



뫼르소는 총으로 아랍인을 살해했지만 아랍인이 먼저 칼로 뫼르소에게 위협을 가했기에 정당방위로 쉽게 풀려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피해자는 피식민인이었기에 뫼르소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 중에 밝혀진 장례식장에서의 뫼르소의 모습이 부각되어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미친다.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의 뫼르소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뉘게 된다.

뫼르소와 가까운 지인들은 뫼르소를 위해 변호를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뫼르소를 단 한 번 마주쳤던 사람들은 그날 뫼르소가 취한 행동에 의문을 품으며 뫼르소를 이상하고 위험한 인물로 몰아간다.



재판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 피살된 아랍인에 대한 언급은 다뤄지지 않게 되고 사건과는 동떨어진  뫼르소의 윤리성에 잣대를 들이밀며 그가 장례식장에서 했던 행동들과 그 이후 상식적이지 않았던 모습에 초점이 맞춰진다.



결국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보였던 행동으로 뫼르소는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중략)  

나는 삶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았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나는 곧 그런 모든 것이 사실상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방인 p.57~58



뫼르소의 평판은 서로 첨예한 대립을 이루지만 사실 그는 그저 모든 일에 무감각한 인간일 뿐이었다.

뫼르소도 한때는 포부와 야심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좌절되면서 상실감과 함께 모든 것들을 권태롭게 여기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직장 상사가 더 좋은 기회를 제시했을 때나 여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레몽의 옳지 않은 부탁에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건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여긴다.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조차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 이방인의 태도로 살아간다.



심지어 레몽이 악의를 품고 했던 부탁들을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 없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레몽의 청을 수락한다.

결국 레몽의 부탁이 문제가 되어 살인이라는 결과에까지 이르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리듯이 살아왔던 뫼르소는 재판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자신은 배제된 채 재판이 진행되고 자신의 운명이 결정됨을 자각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중략 )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방인 p.147



뫼르소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지난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소설 안에는 엄마의 죽음,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사건 그리고 법정에서 뫼르소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세 개의 죽음이 나온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과 아랍인의 죽음 앞에서 냉소적일 정도로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살다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은 곧 죽음이다.

인생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뫼르소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보다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없었다. 삶의 의미를 몰랐기에 재판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 변론의 기회조차 허무하게 날려버린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뫼르소가 죽음에 대한 성찰을 했더라면 그의 인생의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 안에서 지난날을 반추하며 자신의 어머니가 생의 끝자락에서 약혼자를 만들고 삶을 왜 다시 시작하려는지 이해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을 초월해 지금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인생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답을 찾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삶의 덧없음 속에도 살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는 책 알베르 카뮈의『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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