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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부는 책바람 Nov 02. 2023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지는   각성의 '엔딩'

[책리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43~44



한번 들으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제목의 책들이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잘 알려진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명성 때문이기도 하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낭만적인 감성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마치 호감을 품은 상대방이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왠지 로맨틱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악마' 프랑수아즈 사강

사강은 1935 년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다.

사강이란 필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강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문학적인 재능을 보였는데 1958년 19세의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이란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문단에 화제를 일으켰고 그 해에 비평가상을 받는다.



사강은 문학적 성공으로 부와 명예를 얻지만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술, 도박, 마약 등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담으로 김영하 작가는 이러한 사강의 발언을 인용하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하였다.



자살 안내인이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내용과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닌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1



폴은 39세의 실내 장식가로 로제와 6년간 연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폴은 로제 외의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로제는 폴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젊은 여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폴은 자신에게 불성실한 로제와의 관계에 회의감과 깊은 고독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로제와의 익숙해져 버린 관계를 체념하듯 이어가던 중 폴 앞에 준수한 외모의 25살의 변호사 시몽이 나타난다.

시몽은 14살이나 많은 폴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오늘 6시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을 죄송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56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스인 대부분이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브람스 연주회에 초대할 때는 이 질문이 필수라고 한다.

실제로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가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40년간 짝사랑했는데 브람스가 클라라보다 14살 어렸다.



시몽은 폴에게 연주회에 초대하면서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시몽의 물음에 폴은 그동안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질문에 직면한다.

일과 늘 부재중인 로제를 향한 마음에 이끌려 정작 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살피지 못했고 로제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취향마저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폴은 이제껏 자신이 사랑해 온 것이 로제가 아닌 사랑을 지켜온 자신의 헌신이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32



폴은 시몽의 순수한 열정에 설렘을 느끼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에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 사랑이란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임을 알기에 시몽의 사랑을 한때의 지나가는 소나기로 치부해 버리며 그럴수록 로제에게 느꼈던 익숙함과 안정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

결국 다시 외로움에 잠식당할 것을 알면서도 폴은 로제에게 돌아가는데...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5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흔한 삼각관계 이야기를 다룬 연애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매우 뛰어나 사강이 24세에 쓴 것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하고 깊이가 있다.

주인공들의 엇갈린 사랑과 갈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폴, 로제, 시몽 세 사람 각각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바람둥이 로제는 폴의 입장에서 최악의 연인이다.

그러나 폴은 로제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폴 자신이 진정한 인생의 주체가 되어 로제의 부당함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녀의 인생이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50



폴에게도 자신을 향한 물음에 끊임없이 귀 기울였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안정과 익숙함이라는 타성에 젖어 삶의 주도권을 빼앗겨 인생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폴은

시몽의 말대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고독형이라는 형벌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생이 던지는 질문 앞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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