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미로에서 탈출한 그를 환영한다
나는 경찰청 대변인실에서 근무한다. 경찰청의 SNS채널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경찰 관련 영화나 드라마 자문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마약범죄 근절을 위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사유리 채널을 보게 됐다. ‘한 뚝배기 하실래예’로 유명한 로버트 할리가 나오는 콘텐츠였다. 사유리가 할리 집에 찾아가서 할리가 어떻게 사는지, 정말 단약(마약을 끊는 삶)을 하는지는 알아보는 콘텐츠였다. 로버트 할리를 섭외하고 싶어졌다. 매니저랑 통화가 됐다. 할리 씨의 근황과 마약예방을 위한 콘텐츠 제작에 출연을 요청했다. 경찰청 채널이라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출연을 긍정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할리는 지난 2019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었다. 징역형에 집행유예로 나왔지만 우리의 기억에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할리가 정말 마약을 끊을 걸까? 경찰청 마약을 전담하는 부서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로보트 할리랑 영상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그가 마약을 끊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는데"가 돌아온 대답이었다. 일선에서 마약을 수사하는 동기에게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약 수사관의 경험으로도 한 번 마약에 손대고 끊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마약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거구나!
할리의 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마약을 끊는 게 정말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마약을 하는 순간 가족이 떠나고, 친구도 떠나고, 직장에서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자기의 경우는 많은 친구는 떠났지만 소수의 친구가 자기를 지켜주었다고 떠났던 가족이 그를 위해 다시 모였다고 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이 돌아왔고, 막내아들은 24시간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방송인 사유리의 이야기도 했다. 요즘도 거의 매일 사유리랑 통화를 한다고 했다. 사유리나 할리 씨의 가족들처럼 그가 다시 마약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주는 키퍼들이 있어야 하는구나. 할리는 이런 걸 마약에 빠졌던 사람을 지켜주는 네트워크 시스템이라고 했다.
더 이상 할리 측에게서 연락이 없다.
월요일 전화를 했고, 조만간 답을 주기로 했는데 금요일이 됐는데도 답이 없다. 촬영은 다음 주 목요일로 잡아놨는데, 만약 할리가 연락이 없다면 우리가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리가 마약을 못 끊었다고 생각했다. 경찰청에서 출연해 달라고 하니, 당당하지 못한 할리는 양심에 비춰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매니저 핸드폰으로 마지막 전화를 했다.
"할리 씨 출연 건으로 전화드렸던 경찰청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결혼 준비로 이번주 바빠서요 녹화가 언제라고 하셨죠?"
"이번 주 목요일입니다"
매니저가 결혼 준비로 바빠서 할리 씨랑 구체적인 이야기를 못했다고 한다. 지금 월요일이고 3일 후에 촬영인데, 가능할까? 10분 만에 할리 매니저가 연락이 왔다.
"할리 씨가 출연하신답니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는 할리를 만났다. 녹화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나는 로보트 할리는 마약을 끊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마약이 정말 끊기 힘든 걸까?
우리가 행복할 때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 중에 ‘도파민’과 ‘엔돌핀’이 있다고 한다. 그 총량이 주먹만 하다고 하자, 그 주먹만 한 엔돌핀을 인간은 평생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쓴다고 한다. 도파민과 엔돌핀은 마치 작은 양념통에 담겨 있다. 인간이 행복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양념통의 소금이나 후추처럼 조금씩 나와 삶을 감칠맛 나게 한다. 그런데 마약을 하는 순한 양념통의 뚜껑을 손으로 돌려서 한 번에 다 써 버리는 것과 같다. 도파민과 엔돌핀이 없으니 우리의 뇌는 자신을 녹여 억지로 도파민과 엔돌핀을 내어 준다고 한다.
실제 마약한 사람들의 뇌 사진을 보면 전두엽에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뇌 세포는 다시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전두엽이 구멍이 난 채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전두엽은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마약에 중독되면 자신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된 상태로 폭행이나 범죄를 일삼는 거다. 그럼 정말 마약을 끊는 게 불가능한 걸까?
아주 어렵지만 할리 씨처럼 가능하다. 단약을 하고 일 년이 지나면 구멍 난 뇌세포의 옆에 있는 신경이 구멍을 메꿔준다고 한다. 세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신경이 매워주는 인체의 신비로운 활동이다. 실제 마약을 한 사람 옆에서 할리의 가족이나 사유리 씨 같은 사람이 신경 역할을 해 주는 거다. 그게 할리가 말하는 서포트 네트워크라는 거다. 그러니까 마약은 혼자는 절대 못 끊는다. 주변에서 신경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나 치료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마약이 끊기 어려운 것이다.
2023년 마약으로 경찰에 검거된 사람이 2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이 수치는 역대 최고수치다. 또한, 마약은 대표적인 암수범죄인데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박성수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실제 마약 하는 사람은 검거된 사람의 숫자보다 28.57배 많을 것이라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2만 명에 28을 곱하면 50만 명 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마약을 경험하거나 마약에 빠져 있다. 50만 명이면 경기도 김포나 분당의 인구보다 많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처음 발제한 NOEXIT 캠페인의 슬로건처럼 ‘마약은 정말 출구가 없는 미로다’ 이 글을 읽은 모두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여러분의 평생을 써야 하는 행복주머니가 단 한 번의 마약 투약으로 털리기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