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정오음악회

2026년 4월 15일

by HWP

여름처럼 따뜻해진 오늘, 정오의 햇살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향했다. 100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인데 얼마 전에서야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정오 음악회를 알게 되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깊고 고요한 숨결로 나를 맞이하는 듯했다. 올해로 건립 100주년을 맞이한 이 공간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시간의 층위를 차곡차곡 쌓아온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처럼 느껴졌다.


두터운 벽과 높은 천장, 오래된 나무 의자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들어오는 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이었다. 그 안에서 열리는 정오음악회는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4월 8일부터 시작된 이 작은 음악회가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 공연은 흔히 접하기 힘든 리코더 연주였다. 누구나 한 번은 불어 봤을법한 익숙한 악기이지만 이렇게 온전히 음악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드물다.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공기마저 투명해지는 듯했다. 맑고 고운 소리는 마치 봄날의 바람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흐르는 것처럼 섬세했고, 때로는 아주 조용히, 때로는 또렷하게 공간을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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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의 음색은 단순히 ‘맑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그 안에는 따뜻함과 쓸쓸함,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기억까지 함께 스며 있다. 성당이라는 공간과 만나니 그 울림은 더욱 깊어졌다. 높은 천장으로 퍼져 나간 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감싸 안았다. 다양한 크기의 리코더에서 흐르는 선율을 묵직한 첼로 반주가 받쳐주면서 봄날의 따뜻함과 역사적인 장소의 만남, 음악과 공간 그리고 계절이 하나로 겹쳐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드물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돌아오는 길, 여전히 귓가에는 남아있는 리코더의 소리를 기억하며 유튜브에서 리코더 연주 음악을 찾아보았다. 단순한 줄 알았던 악기였는데 다양한 음역대의 무한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들이 많이 있었다. 봄날의 공기와 함께 스며든 그 선율은, 오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소박하지만 깊은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음에도 아마 다시 그곳을 찾게 될 것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고요한 위로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비워내고 채우는 시간. 오늘의 이 경험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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